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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0.18 19:40:49
  • 최종수정2018.10.18 19:40:49

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그날, 주말이라 다니러온 손자를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었다. 탕! 탕! 놀이터에선 서부활극이 벌어지고 있다. 사내아이들 서너 명이 개척시대 총잡이들이라도 된 양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장난감 총을 쏘아댄다. 미끄럼틀에 올라가거나 터널놀이기구 안에 숨어 쏠 때마다 오색 구슬총알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세돌 되는 손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형아들의 활극놀이가 신기한 듯 바라보던 아기가 쪼그리고 앉았다.

 감색 반바지 노랑반팔셔츠를 입은 아기가 바닥에 떨어진 구슬총알들을 줍기 시작한다. 그 모습이 제법 진지하다. 쏟아지는 여름 햇살이 오목오목 우윳빛 팔뚝에 부딪힌다. 작은 단풍잎만한 손바닥에 알록달록 총알들이 너 대 알쯤 모아지면 종종걸음으로 가서 한 옆에 모아놓곤 다시 줍기를 반복했다. 연일 지속되는 고온과 습도로 아기 머리가 비를 맞은 것처럼 흠씬 젖었다.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내려와 눈을 찌르는지 볼록볼록 소시지 같은 팔뚝을 들어 눈가를 훔치곤 한다.

 "승훈아! 그만 줍고 집에 들어가서 씻을까?" 벤치에 앉아 바라보다 말했다. 그랬더니 "할머니, 이거 쓰레기통에 버려야 돼요. 친구들이 밟으면 미끄러져요." 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런 감동이! 땀을 흘리며 진지하게 줍기에 재미있어서 놀이 삼아 줍는 줄 알았다. 활극놀이는 아직 그칠 기미가 없다. 안쓰러웠지만 총알 줍는 일을 잠시 더하도록 두었다가 데리고 들어오는데 손 폰에 문자 도착하는 소리가 들린다.

 "배려만점이네요, 우편번호까지…. 감동입니다." 막 도착한 문자내용이다. 문자를 보낸 분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화가이다. 거리가 멀다보니 뵌 적은 없고, 그분 작품을 내 책에 수록하는 일로 두어 번 통화만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화집이 나와서 보내주겠으니 집 주소를 달라는 문자를 받았었고, 주소를 찍어 보낼 때 우편번호도 보냈을 뿐이다. 이번에 행사를 앞두고, 지인들에게 주소 좀 보내 달라는 문자를 이백여 통 넘게 보냈는데, 우편번호까지 보내준 건 내가 유일하단다. 하여, 감동했다는 거다. 일일이 우편번호 찾는 일이 쉽지 않았었나 보다. 우편번호 하나 보내줌으로 배려만점인 사람이 되고 감동을 줬다니 민망하기가 그지없다.

 아기는 잠이 들었다. 새근거리는 아기를 내려다보노라니 배려란 말이 되뇌어진다. 배려를 말할 것 같으면 뙤약볕에서 총알을 줍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친구들 안전을 염려해 고사리 손으로 총알을 줍다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까, 요 작은 머리로….

 더듬더듬 겨우 문장을 이어가며 말을 배우는 아기가 배려나 선(善)을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놀이방에서 받은 교육과 아까 상황이 연결돼서 실행했든, 제 어미가 평소 했던 교육의 효과이든, 중요한건 오늘 할미를 감동시켰다는 거다.

 이 풍진 세상을 지나며 감동했던 일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어떤 상황에서 감동하며 행복했었나. 살다가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기도 했고 좋은 옷을 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일들이 반드시 행복이나 감동과 함께 오지는 않았다.

 행복이나 감동은 거창한 준비를 하는 중에 오지 않았다. 불시에 소소한 일들로 인하여 손님처럼 오곤 했다. 오늘 총알을 줍는 손자를 보는 것처럼 부지중 와서 머물곤 했다.

 살면서 어떡하면 오늘처럼 감동을 주고 감동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행한 일이 우편번호 찾는 일 보다는 분명 큰 선(善)이었던 적도 있었으나, 오늘처럼 타인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던 건 왜일까. '자신이 하는 일이 선(善)이라고 의식하는 순간 이미 그 선(善)은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다.' 는 말이 있다. 그랬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는 않았었다고 쳐도, 스스로 의식하였다면 남에게 가야할 감동을 내가 가로챈 거다. 그렇게 자기만족에 빠져 스스로 행복했으니 타인에게 줄 감동이 어찌 남았으랴. 총알을 줍듯, 우편번호를 보내주듯, 선행은 본인도 모르는 일상이어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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