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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내 일생에 있는 남자, 내가 사랑하는 남자, 이름은 '기윤(基允)'이요, 내 아들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진실하게 터 잡고 살라고 터 '기' 자와 진실로 '윤' 자를 썼다.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우린 혼과 몸이 일치했다. 아들은 나를 제일 좋아하여 내 품만 파고들었다. 눈도 뜨지 못하면서도 나의 냄새는 어찌 그리 잘 아는지 고개를 흔들면서 나만 찾아댔고, 나는 잠시라도 아들과 떨어져 있을라치면 안절부절 했다. 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표현했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더 많이 사랑한 것이 분명하다.

자라면서 우리는 더욱 친밀해졌다. 외모는 제 아빠를 빼닮았으나 성품은 나를 더 많이 닮아 나와 죽이 더 잘 맞았다. "엄마, 저기 구름이 내 팔뚝처럼 생겼다. 그치?" 말문이 트이면서 정서가 풍부하여 하늘의 몽실 구름만 봐도 이렇게 표현했다. "이건 뭐야? 그럼 이건 뭐야?" 궁금한 것이 많아 쉴 새 없이 묻곤 했다. 두뇌가 명석하나 남에게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고 부모 말에 순종하며 사랑스럽게 자라갔다. 아들에 관하여는 몸으로 먼저 신호가 오곤 했다. 언젠가 젖먹이를 옆집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병원이 갔던 적이 있다. 치료가 더디어지자 마음이 타며 가슴이 뻐근해졌다. 그러더니 못내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눈물 같은 우유 빛 물이 빗물처럼 철철 넘쳐 겉옷까지 흠씬 적시어 곤란을 겪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아기는 꿀꺽꿀꺽 젖을 넘기다 멈추곤 다시 울고 멈추곤 하기를 몇 번 반복했다. 아들이 증평 훈련소에 있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밤새 아팠는데 아들이 보이며 악몽에 시달렸다. 그런데 편지를 보니 아들도 그날 위험할 정도로 앓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아들에게 미안한 것은, 행실이나 성품은 나무랄 데 없는데 단지 시험에 한두 개 틀린 것을 가지고 몰아 부치며 야단쳤던 나의 몽매(蒙昧)함이다. 두고두고 안타까운 것은 호적에 음력으로 생일을 올려 일 년 일찍 초등학교에 조기 입학시킨 거다. 고등학생이 되어 뒤늦게 키가 자랐으므로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목 하나는 더 있는 아이들 틈에서 기죽게 한 것이 지금생각해도 후회막심하다. 사내아이들만이 하는 축구팀에 끼워주지 않아 늘 혼자 놀았다는 말을 부모가 속상해 할까봐 표현하지 않고 있다가 대학생이 되어서 덤덤하게 말을 했을 땐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은 아이를 부모 욕심대로 신림동의 한 평 쪽방에 수년간 가둬버린 것도 미안하다. 적성이 아님에도 부모 말에 거역하지 못하고 젊음을 바쳐 고독하게 한 우물을 파던 아들은 결국 곡괭이를 놓았다. 고시라는 사막에서 파란 물줄기를 찾지 못하고 미련 없이 접던 날, 아들은 부모 뜻에 반하는 길을 가는 불효를 용서해 달라 말했고 우린 아들을 험한 광야로 내몰았던 걸 미안해했다.

기윤이가 아리따운 아가씨를 데리고 왔을 때였다. 아들 잘 키워야 남 좋은 일 시킨다느니, 며느리 감에게 메이커 가방을 받았느니, 그딴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아들이 사랑하고 내 아들을 사랑한다는 여자를 보는 순간 모든 경계가 무너지며 며느리 감이 무조건 예뻤다. "엄마, 제가 행복해요." 제 마음에 든다는 직장을 잡고 딸도 낳더니 하루는 이런 말을 했다. 장가가기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인데, 나를 벗어나 다른 여자에게 가더니 행복하단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건 뭐야? 그럼 이건 뭐야?" 제 아빠 어릴 적 행동들을 알고 있듯이 아기가 할미에게 똑같이 묻는다. 몽매한 사랑이 아이를 힘들게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젠 가슴이 퉁퉁 부어 넘치는 주체 못하는 사랑이 아닌, 한발 물러난 사랑으로 아기를 대한다. "우리 아기 일등 안 해도 되니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고 살아요?" 오늘도 아기와 영상통화를 한다. 내 남자가 나를 제일 사랑하지 않아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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