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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11.15 17:37:38
  • 최종수정2018.11.15 17:37:38

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그들의 집은 높은 나뭇가지 끝이다. 그들을 세상에 내고 키워 인간에게 돌려주는 감나무들은 들판이나 낮은 산, 주택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세상을 붉게 물들이며 감들을 가득 달고 서있는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한편의 시(詩)다. 만물의 우두머리인 인간들의 삶에 한낱 과일 생애를 어찌 비교할까마는 그들의 공중곡예 실력은 흉내 낼 수 없다. 그거야 아슬아슬한 곳에서 낳고 자라 그렇다 쳐도, 세찬 비바람 아랑곳 않고 자란 그들을 볼라치면 인간인 내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 낙과(落果)해 부서져버린 놈들을 보면 마음이 쓰리다. 너는 감인 주제에 어쩌자고 꿈을 성급하게 키웠더란 말이냐.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햇살과, 이따금 바람 날개로 흔들어주는 놀이로는 부족했더란 말이냐. 밤이면 달님이 찾아오고, 별들의 속삭임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더란 말이냐. 하늘에 살면서 더 높이 더 높이 오르려고 하다 떨어져 박살이 나다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나. 마침하게 자라 가지에서 맘껏 행복을 누리다 때가 돼 동무들과 세상으로 같이 가면 좋을 걸 그랬구나.

 시(詩)가 내 집으로 내려왔다. 묵직한 감상자를 풀어헤쳤다. 가지런히 열을 맞춘 주홍 감들이 수줍은 듯 웃는다. 상자에 담긴 은혜가 백네 알이다. 침시 담글 양의 감을 남겨두고, 베란다에 신문지를 깔고 늘여 놓았다. 낙엽이 떨어지고 눈이 내릴 때쯤엔, 주홍빛이라지만 지금은 노랑에 가까운 탁한 놈들이 일몰하는 태양처럼 말갛게 익어 가겠지. 감들의 안부가 궁금한 나는 무시로 베란다를 내다보는 습관이 생기겠지….

 첫눈이 올 때쯤의 어느 날, 커피 향을 마시며 익어가는 감을 내다보는 나를 상상해본다. 정을 담으면 사물자체가 시가 되듯, 나는 한 알 한 알에 담긴 감들의 사연에 취해있다. 도란대는 그들의 이야기가 시가 돼 내안으로 녹아든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말간 홍시 하나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곤 묵직한 무게를 느껴본다. 그리곤 말랑말랑 아기살 같은 감을 가만히 볼에 대본다. 주방으로 옮겨 하얀 접시에 담아 식탁보에 올려놓곤, 장렬한 감의 전사를 위해 기도를 올린다. 감을 먹는다…. 달콤한 향이 입 안 가득 번진다. 혀를 굴려 감 씨를 발라낸다. 사람으로 치면 은밀히 숨겨둔 마음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씨를 감쌌던 부분의 부드럽고 찰진 살맛을 느낀다. 그렇게 나는 겨우내 시를 읊을 거다.

 남겨뒀던 감으로 침시를 담그려고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소주라고 다 같은 게 아녀, 25도, 뚜껑이 빨간색이라야 해, 적시기만 하면 되니 반병이면 충분할거야." 친구가 하는 말이다. 감의 고장 영동남자에게 시집가서 영동 댁이 된 그녀는 내 어머니가 해주셨던 소금물을 끓여 붓는 방법이 아닌, 소주로 담그는 새로운 방법을 일러준다. 소주 한 병을 사다 대접에 쏟았다. 퐁당퐁당 담갔다 얼른 꺼냈다. 소주침례를 마친 감들을 김장비닐봉지로 옮겨 놓았다. 공기차단이 관건인지라 단단히 밀봉하여 45도 정도 따끈한 장판에 묻어두고 만 하루가 지나면 된단다.

 이튿날, 감 하나를 꺼내 삐져 먹어보니 떫은맛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삭아삭한 식감이 가히 최고다. 자연은 내어주고, 누군가의 수고와 땀의 결실이 있었기에 오늘 누리는 은혜이다. 은혜라고 표현함은, 감하나 먹기까지 나는 아무 한일이 없어서다. 아, 여린 감들에게 독한 알코올을 침투시켜서 억지로 탈삽하는 일을 했구나. 꽁꽁 밀봉당해 공기한 점 없는 캄캄한 이불 속에서 밤낮 하루가 넘도록 떫은맛을 토해냈을 놈들의 신세라니…. 이런, 얼른 먹을 생각만 했지 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구나. 베란다에서 오순도순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며 스스로 익어가게 둘 걸 그랬나보다. 이거야 말로 이기심의 발로(發露)요, 감에게 무안한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여, 무안이라니 당치 않소. 그거야 떫은맛을 우려내고자 함이었잖소. 우리 꿈은 온전한 모습으로 그대들에게 가는 것이기에, 뭇 새들의 부리를 피하려면 떫은맛으로 결결이 무장을 해야만 했다오. 세찬비바람과 맞서며 긴 여름을 견디고 단단하게 자람도, 전부를 주고자함 이었다오. 어차피 바쳐질 제물이, 침시로 먹든 홍시로 먹든 무에 상관이리요. 우리의 풍경을 시(詩)라고 노래한 것도, 바람에 떨어져 깨진 것을 보고 안타까워한 것도, 절로 익어가게 가만히 둘 걸 기다리지 못했다고 호들갑떠는 것도 그대이더이다. 그러고 보니 감은 그저 감인 걸…. 혼자 객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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