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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남편이 일박이일여행을 가잔다. 살면서 크고 작은 여행을 한 적이 왜 없었겠나마는 이번엔 자신의 죽마고우들과 부부동반하기로 했다며 표정까지 상기된다. 남자들이야 더할 나위 없는 사이들이지만, 낯 갈이를 하는 나로선 잘 알지 못하는 이들과 밤을 지낸다는 것이 부담됐다. 하지만 시간적 심적 여유가 생기면 가끔 여행을 같이 하며 살고 싶은 어릴 적 친구들이 있다고, 자주 말을 해왔었기에 따라나섰다.

풀벌레 소리가 여름바닷가 산책로에 불거지는 날, 중년의 아내들이 낙조를 보며걸었다. 남은 인생 함께 하고 싶은 친구들이라고, 남편이 늘 말했었노라고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다른 아내들도 각자 집에서 똑 같은 말을 자주 들어왔었다고 말하는 거다. 그 한가지만으로도 우리가 손잡고 걸어야 할 이유가 되지 않느냐고 누군가 말하자, 우린 오랜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손을 잡고 걸었다.

이순을 바라보는 남편동창들이 저만치 걸어간다. 바다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 저들의 뒷모습을 보며 아내들도 따라 걷는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파란 동해바다가 쉬지 않고 넘실대며 수런대는 것을 보니, 앞서 걷는 저들은 지금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끄집어내고 있는가보다. 선이 고운 날개를 펴고 바다 새들이 낮게 비행하며 엿듣는 걸 보니, 추억에 화답하는 파란바다물빛 같은 시라도 쓰고 있는가보다.

서울, 청주, 울산 등 남한을 나눠 가지고 숨 가쁘게 사느라 그간 안부만 물으며 왔다. 그런 세월의 행간(行間)이 있었음에도 어릴 적 별명을 흉허물 없이 부를 수 있는 사람들, 예절을 갖추지 않고 장난치는 그들에게 하얀 테를 두 줄로 두른 중학생 모자를 씌워본다. 현실이라는 거대한 수레에 깔려 주저앉다가도, 서로 존재함으로 인하여 다시 에너지를 발산하는 변치 않는 친구들이다. 생동하는 눈빛, 언어의 화음이 하나로 찰랑대며, 영혼이 있는 피아노 현처럼 팽창한 웃음을 토하곤 한다.

여자는 수다가 많다고 누가 말했나. 남자는 말수가 적다고 누가 그랬나. 반려자들이 끈이 되어 만난 아내들은 함께한 추억이 없어서인지 말수들이 적거늘, 그들의 수다는 끊이질 않는다. 옥이가 어땠고 연이가 어땠고 이야기할 때마다 낄낄거리기까지 한다. 수십 년을 살고도 몰랐던 내 남편의 모습이다. 오늘만큼은 과장님도, 전무님도 아니고, 교장선생님도 아니다. 생기발랄 수줍은 열네 살 소년들일 뿐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저들의 어릴 적 연인들은 좋겠다. 반백년이 지나도 퇴색 되지 않는 설렘으로 저들 안에 있으니 어여쁘구나. 각기 다른 추억을 먹고 자란 아내들은 알 수도 침범할 수도 없는, 우리보다 먼저 저들을 알고 있는 그녀들이 부럽다. 저들을 길러낸 그 땅을 함께 밟으며 같은 물을 먹고 자란 조약돌 같은 연인들이 사랑스럽구나. 그들의 작은 연인들이 이 장면을 고운시를 읽듯이 보았으면 좋겠다.

내 남편이 내가 모르는 추억을 그리며 시를 쓰고 있어도 질투가 나지 않음은 나에게도 그러한 고운 연인 하나쯤 있음일러라. 과거와 끊임없이 화답하며 살아왔기에 오랜 공백의 시간이 결코 어색하지 않을, 옛 동무들이 있음이라. 저마다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상향이 있듯, 나를 간직하고 있는 이성친구가 있을 수 있음이라.

물고기가 어항을 지나듯 빠른 것이 세월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너와 내 안에 곱씹는 추억들은 열기구를 타고 흘러가듯 천천히 간다. 가끔은 산등성이에 머무는 구름처럼 한참씩 정체되기도 한다. 분이야 선이야! 긴 세월이 지나 마음의 소원을 시처럼 이루면서, 우리도 함께 떠나보자. 은하수가 하얗게 수를 놓는 태양의 끝, 방드르디 스페란차 같은 곳에서 식이 철이 이야기를 하며 우리들만의 시를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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