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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연일 미세먼지로 인해 이젠 파란하늘이니 푸른5월이니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자연은 환경에 굴하지 않고 녹음을 내고 꽃을 피워낸다. 자연처럼 여전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간직하고 있는 추억이나 꿈, 잊을 수 없는 일, 또는 그리운 사람 등 일게다. 나 역시 보은(報恩)의 계절을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못내 그리운 선생님이 계셨다. 이번에 꿈처럼 선생님 소식을 접하게 되고 약속이 잡히자 전날부터 설렜다. 만남의 장소로 가는 내내 오십년 전 초등학교 3학년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어떻게 변하셨을까. 마르시고 눈이 크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드디어 선생님 앞에 섰다. 강산이 다섯 번은 바뀌었을 세월을 보내고서 이제 왔노라고 늦은 인사를 올리고 건너다 뵈니 팔순이 임박하셨다는 연세임에도 어렴풋이 옛 모습이 계시다. "나… 실은 자네가 누군지 몰라요…." 선생님께선 나를 기억하지 못하고 계셨다.

예상했던 일이다. 담임을 한적 없으신 데다, 초등학교 3학년 동안 일주일에 한번 특활시간에 글짓기를 잠시 배웠을 뿐이다. 당시엔 아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니 특활시간을 거쳐 간 남의 반 아이들을 어찌 다 기억하시겠나. 나 역시 신화처럼 먼 옛날에 반짝이던 기억 한 토막만 잡고 있었을 뿐 선생님과 함께한 추억은 없다.

무슨 말씀부터 올려야 할까. 어찌해서든 선생님께서 나를 기억해 내시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오십년 전에 겁 많고 부끄럼 많은 작은 아이가슴에 별을 심어 주셨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감사드려야 한다. "벌이 톡, 쏜 것처럼 불어났다고 표현한 걸 칭찬해 주셨습니다." "·…." "아, 오토바이, 90CC 오토바이는 생각나시죠·" "나는 오토바이를 한 번도 타본 일이 없어요." 그러고 보니 오토바이를 태워주셨던 건 다른 분이신 걸, 순간적으로 선생님인가 하고 혼동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글짓기대회에 갈 때마다 내가 버스바닥에 토하곤 하자, 누가 주선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출장가시는 한 선생님이 북이 초등학교까지 태워다 주신 적이 있었다. 암튼 오십년 간 내가 잡고 있었던 기억은 오토바이가 아닌 고래의 춤 이야기다.

다시 카오스의 끝을 헤맨다. 이번엔 상을 타왔던 말씀을 드리면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풀어드리니 퍼즐조각이 맞춰져간다. 당시, 아홉 살인 내게 담임선생님께선 글짓기 반 교실로 가라고 하셨다. 글짓기가 뭔지도 몰라 두려운 맘으로 낯선 교실로 들어갔는데, 선생님께선 '청소' 라는 제목으로 일기처럼 쓰라고 하셨다. "청소하다 친구와 부딪혀 이마가 불어났구나. 이마가 불어났다는 말 앞에 '벌이 쏜 것처럼 톡 불어났다'고 썼구나. 이걸 표현력이라는 거다. 너 글짓기 소질 있다." 선생님께선 아이들이 쓴 글을 한편씩 읽어 가시다 내 글을 이렇게 칭찬하셨다. 난생처음으로 쓴 글에 대한 공개 칭찬을 받은 그날, 별 하나가 가슴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변두리에서 혼자 놀았던 아이, 매사에 자신감이 없던 겁쟁이 가슴에 꿈을 심어주셨던 열매라면서, 부끄러운 연보라 도라지꽃 같은 꽃다발을 두 권의 책으로 엮어 바치니, '언제 내가 미쁜 아이에게 희망이란 불씨를 지폈더냐·' 하시며 선생님이 기뻐하신다. 살아가다 이런 날이 섬광처럼 올 줄이야, 별똥별 같이 휘황한 겨운 행복을, 이 버거운 환대를, 친구들에게 호가호위(狐假虎威)하겠노라 하고 말씀하신다.

악마 아돌프 히틀러에게도 꿈이 있었다고 한다. 미술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중학교 때 담임이 '너는 화가의 자질이 없다.'고 했단다. 단지 그 때문에 그가 악마가 된 건 아니겠지만, 만약 그를 격려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아홉 살 고래는, 첫 춤을 춘 그 후부터 글짓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막연하나마 작가가 되는 꿈을 품게 됐고, 미약하나마 꿈을 이루었다. 별을 주시고도 기억 못하시는 선생님, 주고 기억하시느니 보다 더욱 존경이 간다. 카오스의 끝에서 옛 스승님과 퍼즐을 맞추다 배웠다. 칭찬이 누군가의 가슴에 불씨가 될 수 있고, 그 결과는 작은 불꽃하나가 큰불을 일으키듯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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