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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찻집에 들어섰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안온한 온기, 천천히 흐르는 오래된 음악이 언 몸을 데운다. 눈이 내린다. 눈은 바람 한 점 기웃거릴 틈도 없이 내린다. 커다란 가마솥아궁이에 장작불이 훨훨 타는, 벽에 걸린 사진으로 시선이 갔다. 추억의 장작불이 그리움을 부른다. 스러지는 장작불을 아궁이에서 돋우시던 아버지 모습이 사진위로 투영된다. 커피 향처럼 번지는 진한 그리움 따라 기억 저편으로 들어갔다.

'와그르르….' '워리~쫓쫓쫓….' '딸랑딸랑~~' 익숙한 소리들이 흔들흔들 도는 LP판 속으로 끼어든다. 아버지는 처마 밑에 쌓아두신 마른 장작개비를 한 아름 안아다 '와그르르…' 아궁에 앞에 쏟곤 하셨다. 그리고 불을 지피시기 전에 '워리~쫓쫓쫓….' 하고 온기를 찾아 아궁이 깊숙이 들어간 강아지를 불러내시면 부름에 화답하는 듯 '딸랑딸랑~~' 하고 방울소리를 내며 나오곤 했다. 어떤 날은 고몰 개에 끌려 나오기도 했는데, 그런 날에는 하얀 워리 털이 잿빛으로 염색을 하고 기어 나왔다.

탁, 탁, 성냥개비를 성냥골에 긋는 소리, 생명을 지피는 소리다.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한 아버지가 아침저녁으로 구들장을 달구어 생명 같은 온기를 불어 넣으시곤 했다. 매캐한 냇내가 방 안 가득 번지며 온기가 돌면 나는 달콤한 새벽잠에 다시 빠져들곤 했다. 성근 벽돌 사이로 스며든 칼바람에 문고리가 쩍쩍 들러붙는 날, 가장으로서 하시는 첫 번째 몫의 일이 군불을 때는 일이었다.

아버지 곁에 앉아 훨훨 타는 장작불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쌓은 장작더미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푸른 불꽃의 파괴력은, 알 수 없는 생명력으로 용솟음치게 했다. 가마솥을 삼킬 듯 아궁이 가득한 불꽃은 무수한 상상력을 유발시켰다. 불사조처럼 훨훨 나는 가벼운 몸놀림, 거침없는 자유로운 몸짓, 붉은 탁류에 휩쓸리는 역동적인 생명체는 가슴을 뛰게 했다. 불같이 뜨거운 심장으로 무언가에 도전하여 심취해보고 싶었고, 온몸을 장작처럼 태우는 불꽃같은 사랑에 빠져보고도 싶었다. 가난이라는 현실을 산산이 부수고 불나방처럼 날아올라 풍요에 도달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군불을 때셨다. 그러나 구들장 온기는 너무 짧았다. 그을린 아궁이처럼 속만 탈 뿐 열기가 긴긴 겨울밤을 버티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아버진 겨우내 온 산을 헤매고 다니시며 모자라는 생명 조각들을 찾아 갈퀴질을 하셨다. 야박한 겨울 해가 뒷산에 걸릴 때쯤 아버지 마중을 갈 때면, 닭장철망사이로 스며든 손톱만한 태양빛을 등에 업고 닭들이 미동도 않고 있었다. 나는 조는 닭들이 깰까봐 살그머니 사립문을 열고 나갔다. 웅덩이에 듬성듬성한 살얼음을 꼭꼭 밟으며 놀다 저만치 아버지 나뭇짐이 보이면 집으로 달려와 사립문을 활짝 열어놓곤 했다.

담 모퉁이를 스치는 짧은 겨울 해를 놓칠라 햇살 한줌 이마에 올려놓고, 담소하는 동네 아낙네들 앞으로 아버지 나뭇짐이 천천히 반원을 그리며 돌았다. 집채만 한 아버지나뭇짐을 동네아낙들이 칭송할라치면 잿빛 연무를 뚫고 나왔던 목 짧은 해가 나뭇짐 너머로 반짝거렸다. 산에서 눈을 헤집고 모은 낙엽들과 솔가지로 얼기설기 엮었던 아버지 나뭇짐풍경과 정겨운 소리들이 찻잔 위로 그렁하니 여울진다.

삶은 부조리한 것이어서 사막에 꽃을 피우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산다는 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지루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삶은 허상이 아닌, 현실이라는 딱딱한 뼈에 붙은 물렁물렁한 살집 같이 만져지지만 결코 부드럽지만은 않다. 그것이 휘청거리게 하며 멍들게 하고 아프게도 했다.

세상을 향하여 소리치고 싶으면 아버지를 떠올린다. 산다는 건, 자기 안의 우물을 들여다보면서 서로에게 따뜻한 온기를 넣어주는 군불 때는 일 같은 것, 아파하면 보듬어주며 말없이 불을 지펴주는 일, 굳게 닫힌 성 같은 표정의 아버지처럼 불꽃을 묵묵히 바라보시며 장작을 고이는 것이 결국 살아가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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