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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12.12 16:47:12
  • 최종수정2019.12.12 16:47:12

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한 아이가 길을 간다. 갈래 길이 나타나자 갈 바를 모르고 서성인다. 발을 들어 이쪽 길에 내딛으며 갈까 하다 다시 저쪽 길에 내딛어 본다. 이길 저 길에 발을 디밀었다 빼기를 반복하더니 멈칫거릴 수는 없는 상황이라도 됐는지 한길을 택하여 걸어간다. 얼마쯤 걸어갔을까. 사위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는데, 큰 폭포가 보이면서 길이 끊기고 말았다. 지축을 흔드는 굉음에 다리가 굳어버렸다. 길고 희뿌연 짐승혓바닥 같은 물줄기가 암흑 속에서 미끄럼판을 만들며 직수로 쏟아진다. 어둠 속에 갇힌 악마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곤 몸부림친다. 흑백 춤사위에 맞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거품파편들을 튀긴다. 그러다 수레바퀴처럼 둥글게 말리며 내달려와서 아이를 휘감아가려는 찰나, 눈을 떴다. 꿈이다. 소스라치게 놀라 잠이 깼다.

불을 켰다. 그 애가 죽었는데, 열다섯 살짜리가 영원히 지구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폭포 꿈은 뭔가. 지난해 여름, 교회에서 중고등부 수련회 다녀오다가 그 애와 영동에 있는 옥계폭포에 들렀던 기억 때문일까. 어둠속에서 광란하는 폭포 앞에 실제 서있는 것처럼 꿈이 너무도 선명하고, 꿈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두려움이 너무 강렬하여 가슴이 두근거린다. 시계를 보니 새벽세시다. 여명이 오려면 아직 이라 다시 잠을 청하려고 누웠다. 어젯밤에 목사님과 다녀온 장례식장풍경이 떠오른다.

너무도 앳된 아이 영정사진을 끌어안고 오열하던 젊디젊은 여인이 스친다. 만나보고 싶었던 여인이다. 왜 어린핏덩이를 내팽개치고 집을 나갔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내게 쓰러져 우는 젊은 여인 어깨를 가만히 안고 있기만 했을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나를 처음 찾아온 그날은 주일이었다. 공부는 여벌이고 학교와 사회에서 지탄받는 아이들과 어울려 부탄가스를 마시며 잔 뒤, 충혈 된 눈으로 왔었다. "교회에서 점심 준다면서요?" 중2 담임인 내게 내뱉은 첫마디다.

아이 할머니를 만났었다. 팔순노모와 삼촌과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어린여자가 핏덩이를 맡겨놓고 갔단다. 그 뒤 아이 옷가지를 사서 가끔 다녀가는 게 다였고 애 아빠는 교도소에 있다고 했다. 정신지체자인 삼촌 매질을 피해 거리로 나온 아이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주일날 따뜻한 밥한 끼 챙겨주고, 피자집에서 가끔 만나고, 수련회에 데리고 다니는 정도가 다였다.

"인생길을 가다 보면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거란다, 오르막길 다음에는 반드시 편안한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니 힘들어도 꿈을 가지고 인내하며 걸어가야 한다." 그 애가 떠나기 전해 여름방학 때, 수련회 다녀오다 들른 영동옥계폭포 앞에서 나는 이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분이 가신 길을 잘 따라 가야 한다고, 영혼의 길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다. 묵묵히 대답이 없는 아이에게 그래도 꿈을 가져야 한다고 다그치듯 말했더니 고개를 끄덕였었다.

인생길이나 영혼의길 이야기가 무슨 흥미가 있었겠나. 길 이야기 하는 자체가 무리라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막대기라도 던져 건져내지는 않고 어서 힘내어 나오라고 말만하는 것과 같다 해도, 나로선 대안이 없었다. 어디까지 가려고 했던 걸까.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다 새벽에 교통사고로 죽은 걸 보면 지구 끝까지라도 달려갈 작정이었나 보다. 무엇이 그 아이로 하여금 미친 듯 달리게 했을까. 장례식장에 다녀오던 날, 꼬리를 무는 그런 생각들을 했었다.

이제 그 아이 일은 옛일이 되었건만, 어린 남학생들을 보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길이야 잘못 들어설 수도 있는 것, 다시 돌아 나오면 되는 것을 그 애는 영영 오지 못할 길로 가버렸다. 어릴 적에 부모에게 버림받으면 올바른 자아추구 실패로 좋은 성격구조 자체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 불행의 근원을 제공한건 어른들인데 죽은 건 아이다. 완전한 행복이란 없듯이 완전한 불행도 없고, 완전한 선인도 완전한 악인도 없는 것을, 이런 이치를 알기도 전에 그 아이는 사람들로부터 지탄만 받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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