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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06 16:45:34
  • 최종수정2020.02.06 16:45:33

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설 쇠러온 손녀가 사촌끼리 놀다 제 뜻대로 되지 않자 불같이 화를 내며 떼쓰고 우는 거다. 제 나름 설명을 하는데 그 설명이란 것이 어른 시각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지만 제 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우리 내외는 우는 것조차 귀여워서 구경을 하는데 며늘애는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를 데리고 훈육을 한다. 성깔이 이래서 유치원에서는 어찌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지 걱정이라며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가 제 할미를 닮았다고 불쑥 말하는 게 아닌가.

제 아빠는 어려서부터 순해빠졌었다. 셋방살이도 서러운데 제 또래 안집 손자에게 툭하면 맞고 우는 거다.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한번은 남편이 말했다. "00이가 때리면 주먹을 날리는 거야 이렇게, 알았지?" 하고 주먹질연습을 시켰다. 그랬더니 "주먹으로 때리면 00이가 아프잖아, 그러니까 손바닥으로 때릴 거야" 하고 말하는 거다. 그날도 아들은 주먹을 쥐었다 펴는 순간 먼저 들어온 펀치에 맞고 울었다.

그렇게 순해 빠졌으니 제 아비도 아니고, 밝고 좀체 화를 안 낸다는 제 어미도 아니고, 여유 있고 느린 제 할아버지도 아니라면 저 성깔은 정말 나를 닮았을까.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적에 뭐가 그리 맘에 안 드는 일이 많았는지 툭하면 밥을 안 먹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 그래서 늦둥이 막내인 나를 나이차가 많은 올케들이 까탈고모라고 불렀다. 나 역시 당하면 당했지 누굴 때려본 기억은 없으나 불같이 화를 내며 뜻을 정하면 굽히지 않는 성깔이 있다. 그 성깔이 한번 튀어나오면 진실여부보다는 내 판단만 고집하고 상상까지 덧붙여 몰아 부치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한복을 걷어 부치고 앙앙 우는 손녀를 보자니 우리나라 고전소설 중 베스트셀러인 춘향전 한 대목이 생각났다. 춘향에 대한 지고지순한 이미지만 있던 나는 이몽룡과 이별장면에서 그녀의 태도가 너무 의외라 흥미롭게 읽었었다. 어느 날 이몽룡이 춘향을 찾아와 영전하는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가게 되었노라고 입장을 말한다. 여필종부라고, 천리 길인들 마다하랴 만리길인들 마다하랴 서방님 가시는 길 어디인들 안 따라 갈까봐 그러냐면서, 춘향은 물색 모르고 반겨 말한다. 그런데 이몽룡 말하길 지금은 형편상 함께 갈 수 없으니 다음을 기약하자며 작별을 통보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춘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발길로 치맛자락을 걷어 올려 쫙쫙 찢어 내던지고, 정표로 건네는 명경채경도 냅다 뿌리친다. 문지방이 들썩이도록 와그르르 탕탕 후다닥거리며 사생결단을 하듯 이 도령을 몰아 부친다. 춘향은 곱고 아리따운 미모와, 한지아비만 섬기는 절개를 옥에 갇히면서 지켜낸, 조선여성의 대명사다. 어떠한 환경이나 부귀도 한 남자에게 바친 순정과 비길 수 없으므로, 불굴의 의지로 변절하지 않아 춘향은 시대를 초월하여 남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그런데 소설의 이 대목은 그녀가 다혈질이고 불같은 성질의 처녀임을 묘사하고 있다.

숙종 때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작자미상 춘향전은 남성 작품일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대다수 남성들은 내 여자는 나긋나긋한 애교와 순애보, 그리고 어여쁜 미모까지 겸비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강한 그녀의 성깔이 없다면 변 사또 구애를 어찌 단호하게 거절했겠는가. 문지방이 흔들릴 정도로 퍼부어대는 불같은 성깔이 있는 반면, 선명한 성격이기에 마음을 정하면 변심하지 않는 장점도 있는 거다.

사람성품은 타고 난다고 한다. 그중엔 부모로부터 유전되는 부정적인 기질도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론에서 양육자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과 환경에 따라 부정적인 부분도 긍정적으로 진화한다고 했다. 하지만 타고난 기질은 죽는 순간까지 내재한다는 말도 했다. 이몽룡이 춘향의 불같은 성격을 먼저 보았다면 춘향전은 다르게 써나갔을 거다. 그녀의 단점은 숨겨지고 사락사락 치맛자락 날리며 그네 뛰는 걸 보았기에 광한루 사랑이 이루어졌지 않았을까. 나에게 내재한 단점도 남편과 연애할 때 보이지 않았다는 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손녀는 다시 천진하게 깔깔 웃는다. 성깔 부리던 모습도 저 모습도 영락없는 내 모습이다. 춘향이처럼 곱고 아리땁지도 않건만 단점을 모르고 결혼해준 남편이 아이를 보며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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