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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무술년 새날이 밝으면서 십년 전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십년 전 어느 날, 이순을 넘긴 한 여인이 숲속에서 첼로 연주하는 걸 보았다. 그녀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장을 담그는 일을 한다는데, 틈틈이 취미로 연주를 한다고 했다. 따뜻한 음색과 풍부한 울림, 포용적인 중저음. 더없이 매력적인 그 소리에 그날 나는 빠져버렸다.

이동하여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과, 사람음성과 가장 흡사하다는 말에 꽂혀 악기를 구입했는데, 당시로선 거금을 들여 샀다. 악보는 초견이 되고 피아노로 예배반주정도는 하는지라 좀 쉽게 가리라 생각하고 수소문하여 레슨선생님을 정했다. 그런데 어려서 접한 피아노와달리 늦게 접해서인지 적응하지 못하고 활을 놓고 말았다.

그 무렵, 찬란한 무지갯빛 옷을 입고 수필이 다가왔다. 변심한 연인의 마음이 이럴까· 온 마음이 수필에게 옮겨져 풍덩 빠져버린 것이다. 수필은 내게 거대한 물결과도 같았다. 큰 물결이 작은 물결을 덮어버리듯, 큰 감정이 작은 감정을 덮어버리듯, 수필은 내 모든 삶을 덮어버렸다. 좋은 글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쓰는 게 좋아 글을 쓰느라 밤새우기를 종종 하면서 십년을 보냈다. 그러니, 기본자세 익히느라고 한 달 내내 활만 긋게 하는 첼로가 밀린 건 자연스런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열정을 다하여 십년을 몰두하면 전문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도 있건만, 나의 글 세계는 아직도 부끄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졸작을 달라고 하면 그저 달라는 것이 좋아 사양 않고 염치없이 여기저기 지면에 내보냈다. 겁도 없이 책을 두 권씩이나 엮었다. 그랬더니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만 불리던 나를 사람들이 수필가누구로 이름을 불러주는 게 아닌가. 밥만 하던 여자에게 일어난 신기한 일이다.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며 써대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이제 십년 후 내 모습을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을까. 다른 이름을 하나 더 갖는다면 어떤 이름을 가져야할까. 첼로를 하자. 글 쓰는 첼로리스트, 그거 괜찮다. 이 시점에서 시작해야한다. 이시점이라 하는 건, 무슨 일이든 목표를 두면 십년정도는 고군분투(孤軍奮鬪)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持論)이어서다.

'날 좀 봐줘요!' 서재 문을 여니,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톤의 소리가 들린다. 두툼하고 검은 옷을 입은 첼로가 피아노 옆에 기대어 말을 걸어온다.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다. 이 방을 드나들 때마다 자주 들어왔다. 그때마다 못다 푼 숙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둔중한 심정으로 마음이 머문 적이 있기도 했으나 외면하곤 했었다.

굳게 닫힌 뻣뻣한 지퍼를 열었다. 줄 끊어진 첼로가 검은 가방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참으로 오랫동안 갇혀있었다. 방치해 놓은 그간 이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도무지 악기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윙~ 운다. 한 가닥 남아 있는 줄을 튕기노라니 둔탁한 소리를 낸다. 줄은 언제 끊어졌을까. 브릿지는 언제 가라앉았을까. 줄이 끊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조여 준 적 없었건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제 혼자 끊어져 버린걸 보니, 잊혀 진다는 건 사람이든 물건이든 서러운 일인가보다.

시간은 물과 같이 흐른다. 악기를 방치한 채 가버린 시간들은 하늘의 달과 같이 닿을 수는 없다. 하지만 피 같은 돈을 아끼지 않고 악기를 구입했던 당시의 초심을 캐내는 건 가능하잖은가. 첼로 줄을 갈고 활을 바꾸었다. 이 결심을 현에 얹고 차곡차곡 성장을 이루어가는 거다. 내가 택하여 가는 이 길 위에서 즐거움에 이르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여러 차례 산을 넘기도 할 거다. 그러나 숨을 고르면서 몸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릴지언정, 활을 꺾는 일을 반복하지는 않아야 하리라.

십년 후, 석양이 산등성이에 내려앉는 강변에 홀로 앉아 연주하는 내가 보인다. 실력의 익숙함과 서투름, 즉 교졸(巧拙)을 벗어나, 뛰는 물고기와 자갈들을 벗 삼아 이미 즐거움에 이르러 있다. 언젠가는 도래(到來)하고야 말 그날,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수백만 광년보다 넓은 우주로 들어가는 그날, 우주 그 어딘가에 내가 안식할 나의 주소를 부여하는 꿈을 꾸면서 활을 밀고 당기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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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