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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3.22 13:34:10
  • 최종수정2018.03.22 13:34:10

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무술년 새날이 밝으면서 십년 전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십년 전 어느 날, 이순을 넘긴 한 여인이 숲속에서 첼로 연주하는 걸 보았다. 그녀는 전원생활을 하면서 장을 담그는 일을 한다는데, 틈틈이 취미로 연주를 한다고 했다. 따뜻한 음색과 풍부한 울림, 포용적인 중저음. 더없이 매력적인 그 소리에 그날 나는 빠져버렸다.

이동하여 연주할 수 있다는 장점과, 사람음성과 가장 흡사하다는 말에 꽂혀 악기를 구입했는데, 당시로선 거금을 들여 샀다. 악보는 초견이 되고 피아노로 예배반주정도는 하는지라 좀 쉽게 가리라 생각하고 수소문하여 레슨선생님을 정했다. 그런데 어려서 접한 피아노와달리 늦게 접해서인지 적응하지 못하고 활을 놓고 말았다.

그 무렵, 찬란한 무지갯빛 옷을 입고 수필이 다가왔다. 변심한 연인의 마음이 이럴까· 온 마음이 수필에게 옮겨져 풍덩 빠져버린 것이다. 수필은 내게 거대한 물결과도 같았다. 큰 물결이 작은 물결을 덮어버리듯, 큰 감정이 작은 감정을 덮어버리듯, 수필은 내 모든 삶을 덮어버렸다. 좋은 글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쓰는 게 좋아 글을 쓰느라 밤새우기를 종종 하면서 십년을 보냈다. 그러니, 기본자세 익히느라고 한 달 내내 활만 긋게 하는 첼로가 밀린 건 자연스런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든 열정을 다하여 십년을 몰두하면 전문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말도 있건만, 나의 글 세계는 아직도 부끄러울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졸작을 달라고 하면 그저 달라는 것이 좋아 사양 않고 염치없이 여기저기 지면에 내보냈다. 겁도 없이 책을 두 권씩이나 엮었다. 그랬더니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만 불리던 나를 사람들이 수필가누구로 이름을 불러주는 게 아닌가. 밥만 하던 여자에게 일어난 신기한 일이다.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며 써대지 않았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

이제 십년 후 내 모습을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가고 있을까. 다른 이름을 하나 더 갖는다면 어떤 이름을 가져야할까. 첼로를 하자. 글 쓰는 첼로리스트, 그거 괜찮다. 이 시점에서 시작해야한다. 이시점이라 하는 건, 무슨 일이든 목표를 두면 십년정도는 고군분투(孤軍奮鬪)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持論)이어서다.

'날 좀 봐줘요!' 서재 문을 여니, 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톤의 소리가 들린다. 두툼하고 검은 옷을 입은 첼로가 피아노 옆에 기대어 말을 걸어온다. 처음 듣는 소리는 아니다. 이 방을 드나들 때마다 자주 들어왔다. 그때마다 못다 푼 숙제를 안고 있는 것처럼 둔중한 심정으로 마음이 머문 적이 있기도 했으나 외면하곤 했었다.

굳게 닫힌 뻣뻣한 지퍼를 열었다. 줄 끊어진 첼로가 검은 가방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참으로 오랫동안 갇혀있었다. 방치해 놓은 그간 이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도무지 악기라고 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윙~ 운다. 한 가닥 남아 있는 줄을 튕기노라니 둔탁한 소리를 낸다. 줄은 언제 끊어졌을까. 브릿지는 언제 가라앉았을까. 줄이 끊어질 정도로 팽팽하게 조여 준 적 없었건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제 혼자 끊어져 버린걸 보니, 잊혀 진다는 건 사람이든 물건이든 서러운 일인가보다.

시간은 물과 같이 흐른다. 악기를 방치한 채 가버린 시간들은 하늘의 달과 같이 닿을 수는 없다. 하지만 피 같은 돈을 아끼지 않고 악기를 구입했던 당시의 초심을 캐내는 건 가능하잖은가. 첼로 줄을 갈고 활을 바꾸었다. 이 결심을 현에 얹고 차곡차곡 성장을 이루어가는 거다. 내가 택하여 가는 이 길 위에서 즐거움에 이르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여러 차례 산을 넘기도 할 거다. 그러나 숨을 고르면서 몸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릴지언정, 활을 꺾는 일을 반복하지는 않아야 하리라.

십년 후, 석양이 산등성이에 내려앉는 강변에 홀로 앉아 연주하는 내가 보인다. 실력의 익숙함과 서투름, 즉 교졸(巧拙)을 벗어나, 뛰는 물고기와 자갈들을 벗 삼아 이미 즐거움에 이르러 있다. 언젠가는 도래(到來)하고야 말 그날, 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수백만 광년보다 넓은 우주로 들어가는 그날, 우주 그 어딘가에 내가 안식할 나의 주소를 부여하는 꿈을 꾸면서 활을 밀고 당기고 있는 나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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