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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1인1책 프로그램 강사

겨울산은 황량하다. 산등성로 날리는 눈발이 잘다. 칼바람이 한차례 불어오더니 바위에 기대어 둥글게 굽은 채로 자란 한그루 소나무를 냅다 흔들어댄다. 바르르…. 춥다 못해 아프다는 듯 굽은 소나무가 길게 떤다. 눈이 아릿해진다. 어느 전설 같은 날, 친절한 바람의 손길이 척박한 바위 틈새에 소나무 씨앗을 날라다 주었을까. 믿음직 하려거든 저 바위만큼은 되어야지. 강인함을 말하려면 저 소나무만큼은 되어야지. 선鮮또한 곱게 굽은 저 정도는 되면서 말해야 어설픈 뽐냄이 아니지. 바위는 소나무 씨앗을 품고, 소나무는 바위를 의지하여 합방한 것이 의좋은 부부를 보는 것 같다. 땅을 가르고 뿌리를 뻗고 하늘 향하여 오르는 위용 당당 낙락장송은 아니지만, 높은 산꼭대기에서 유구한 시간을 두고 빚어낸 자연 분재를 한참 구경한다.

등이 굽었던 내 어머니를 닮은 소나무 표피를 만져본다. 어머니는 바위 틈새에 뿌리내린 소나무 씨앗처럼, 무뚝뚝한 아버지 가슴에 뿌리내리고 의지하며 육 남매를 낳아 기르셨다. 아버진 잘 웃지 않으셨다. 함묵한 바위처럼 퉁소를 불어도 춤추지 않는 분이셨다. 가난하면 살갑기라도 하실 것이지, 한미한 가산만큼이나 표정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으셨다. 어머니와 마주보고 어찌 부드러운 말이라도 하셔서 우리를 낳았을까 할 정도로 뻣뻣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때론 비정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아버지인들 풍상의 세월이 왜 없었겠나마는, 폭신폭신한 흙 한줌 넉넉잖은 바위처럼 맨몸으로 세파와 맞서 가정을 이끄신 아버지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햐." 도시로 가려고 내가 이력서를 쓸 때마다 어머니가 하시던 이런 말씀도 까마득한 과거지사가 됐다. 능력도 없으면서 늦둥이로 나를 낳고는 지아비에게 기대어 무념의 삶을 사는 것 같은 어머니 삶이 싫었다. 송충이 삶 운운하며 좁은 고향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 말씀이 창살처럼 죄었다.

그런 날은 뒷동산으로 올라갔다. 형태가 사슴이 배를 깔고 누워 있는 것 같아서 '사슴배'라고 불렀던 뒷동산에 앉아 있노라면 뽁! 하고 경부선 기차가 지나가곤 했다. 아침에 보니 편지를 남기고 딸이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숨 쉬시던 집안 아저씨 모습이 떠올랐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학교도 못 다니고 남동생 들을 거두며 살더니 얼마나 힘에 부쳤으면 야간열차를 탔을까…. 잔디에 누웠다. 낙락장송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한줄기 바람이 지날 때마다 솔방울들이 솔솔 소리 없는 방울소리를 냈다. 그 애는 어디로 갔을까…. 그런데 이 소나무는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어떻게 이 한곳에 뿌리 내리고 가만히 서서 있을까. 소나무는 참 한결 같기도 하지, 소나무야, 어머니 말씀처럼 솔잎만 먹다보면 미래라는 어느 날, 정녕 나도 너처럼 무엇이라도 되어 있을 수 있는 거니? 기차소리는 신기하기도 했다. 시끄러운 내 마음을 철거덕철거덕 만지며 지나가면 들끓음이 슬며시 가라앉으니 말이다.

그 후 고향에 있는 유치원에 출근하면서 어린이들에게 정을 붙였다. 햇살이 좋은 날이면 어린이들을 데리고 근처 동산으로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곳에도 잘생긴 소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었다. 그런데 소나무는 다시 사람을 심란하게 했다. 잘 자라 듬직하게 서있는 소나무를 보면 가라앉았던 마음이 움직이며 물음을 하게 된다. 나는 바른 길을 택한 건가? 저처럼 고향에 뿌리내리는 것이 맞는 건가? 솔숲사이로 뛰는 어린이들을 보며 묻고 물었다. 재잘거리는 꼬마들 소리에 정신을 가다듬고 소나무를 올려다볼라치면, 물음에 화답은 않고 솔방울만 툭툭 떨어트려주곤 했다.

윙윙~ 한차례 불어오는 바람에 굽은 소나무가 위아래로 천천히 가지를 움직인다. 굽은 소나무처럼 사셨던 어머니 삶에 지금 내 모습이 오버랩 된다. 나는 어머니 말씀처럼 고향에 뿌리 내리지 않고 결국 떠나와 살았다. 내 삶을 돌아본다. 그런데 무념의 삶처럼 조악하게 보였던 어머니 삶처럼, 나 역시 한 남자에게 기대어 나이 들어가고 있다. 나는 언제쯤 성충하여 날갯짓을 할까. 수차례 탈피과정을 거쳐 어느덧 인생 6령 고지에 서있음에도 예나 지금이나 소나무는 나로 하여금 물음을 하게 한다. 산다는 건 화려한 꽃만 보는 것이 아니요, 찬란한 날개로 창공을 나는 것만이 아니더라는 걸 깨닫는다. 긴 추억도 지나고 보면 한줌이고 긴 것 같으나 지나고 보면 삶도 한 단막에 불과하다. 산다는 건 열기구를 타고 가는 것처럼 그저 지나는 가는 것이거늘…. 그날 나는 높은 산에서 소나무와 끝없는 문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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