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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그날 아침, 세탁실 베란다 창을 열고 화단을 내려다보았다. 초록색 전나무가 바로 눈 아래 있다.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5층이었다. 그렇다 보니 3층까지 올라온 전나무가 바로 눈 아래 보였던 거다. 나무 한쪽 가지가 허옇게 찢겨나갔다. 울컥 목울대가 움직였다. '초록 금나무야….' 하고 나직이 불렀다. 노란 단풍이 든 적 없고 황금 열매를 매단 적 없으나 그리 불렀다. 초록 전나무를 그리 부른 건, 나무를 찬양하는 마땅한 호칭을 찾을 수 없어서였다.

잠시 나는 나무를 더 응시했다. '무슨 말을 하시려는지 알아요….' '얼마나 아팠니….' 나무는 살랑살랑 이파리를 흔들었다. '너에게 상(賞)을 줄 거야.' 하고 창을 닫았다. 전날까지는 감정 없이 대하던 나무였다. 내 관심 안에 있지 않은 나무였다. 그런데 하루 사이에 대화를 하고 특별한 대우를 하다니, 내가 너무 가볍거나 변덕스러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슨 상(賞)을 줄까 고민했다. 불편한이야기지만, 세월이 지났으니 말해도 될 것 같다.

전날, 저녁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고 있었다. 사위로 어둠이 내려앉는다. 우리 아파트 뒤꼍쯤 오자 습관처럼 5층을 올려다보았다. 옆집 주방은 불이 환한데 우리 집은 캄캄했다. 남편은 회식 있다고 했고, 한창 대학 생활을 즐기는 딸도 늦는다고 했다. '서울에서 공부하는 아들이 왔을 리 없으니 캄캄한 게 당연하지….' 하는 순간, 희뿌연 물체가 옥상에서 떨어지며 우리 주방 창을 지나는가 했더니 "지지직!" 하면서 바닥에 툭 떨어졌다. '우리 통로 뉘 집에서 옥상에 널어둔 이불이 떨어졌나? 근데 지지직! 저 소리는 뭐지?' 하고 다가갔다. 순간 발이 땅에 얼어붙었다. '119! 119!' 하며 핸드폰을 열긴 했는데 손가락이 마비됐는지 누르질 못하고는 "사람이 떨어졌어요!" 하고 소리만 질렀다. 잠시 뒤 지나던 누군가 연락을 했고 바로 구조대가 도착했다.

같은 통로에 사는 여대생 얼굴이 아른거려서 밤새 잠을 설쳤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인사만 나누는 관계라 학생 어머니에게 감히 전화를 해 볼 수도 없었다. "오 하나님 제발요!" 새벽기도에 가서 이렇게 기도만 했다. 이튿날 아침, 통로 반장으로부터 죽지 않았고 크게 다치지도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남편과 함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천만다행으로 전나무를 거치는 바람에 충격을 줄여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얼마나 고맙던지…. 얼마나 고맙던지…. '장하다. 이때를 위해 이곳에 서 있었구나!' 나무의 굵은 가지가 찢어진 채 속살이 허연 남은 가지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린나무였다면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을 터인데 튼실하게 자라 충격을 완화 시킨 것이 대견했다.

그때는 반상회가 있었다. 예쁜 꽃들도 많건만, 전나무를 심어 창을 가린다고 저층 주민들이 불평했었다. 전나무는 수백 년 수령에 멋진 수형과 넓은 둘레를 자랑하는 관청지정 보호수가 아니다. 신선의 풍모와 도사의 골격을 갖추어 칭송받는 노거수도 아니다. 동네 어귀에 서서 당당한 수세로 들고나는 사람들로부터 섬김받는 나무도 아니다. 고산식물이라면 생명력으로 작용하는 환약에 쓰이기라도 할 것을, 아파트 뒤꼍에서 파랗게 질려 사는 나무다.

봄날 산벚나무는 하늘빛과 어우러져 아스라이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거늘, 전나무 꽃은 화려하지도 않다. 화단 위치가 북쪽이라 달도 비껴간다. 그러니 달빛 그림자를 반영하여 가슴에 스며드는 애상한 정서를 주지도 않는다. 쓸쓸한 음악처럼 결핍의 정서만 느껴지던 나무였다. 전지를 해주긴 했으나 연중행사 정도라서 전지가 자람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수형이 제멋대로 뻗어 전아(典雅)하지도 않다. 수세를 말하라면 되려 조야(粗野)함에 가깝고 공소(空疎)하다 보니 반상회 때에 베어 버리자는 소리나 듣던 나무다.

문구점에 가서 아이보리색과 갈색으로 배색이 된 리본을 사왔다. 의자를 가지고 화단으로 나갔다. 의자 위에 올라서서 까치발을 딛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최대한 높이 리본을 꽁꽁 묶었다. 집에 올라와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에게 상을 내리노라!' 그때 새 한 마리가 나무로 들더니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걸요!' 하면서 '히리찌 히리쫑'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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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