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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딸이 6개월 된 제 아들 엎드리기 훈련시키는 동영상을 보내왔다. 아기가 집중할 딸랑이를 흔들자 아기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딸랑이를 흔들며 점점 바닥에 내려놓자 아기가 몸을 옆으로 돌려 딸랑이를 잡으려고 손을 뻗힌다. 손이 미치지 못하자 엎드려 보려 애쓰지만 거기까지다. 엎드려 팔을 내밀면 목적한 장난감을 잡을 수 있건만 아기에겐 아직 어렵다. 제 엄마가 엎드리기 쉽도록 다리를 꼬아 놓고 굴린다. 그런데 몸이 기울어지자 엎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닌가?

다리를 꼬아 굴리며 도와주는데 엎어지지 않으려 힘을 쓴다다는 건, 천장만 보고 지내던 아기에겐 엎드리는 일이 모험처럼 느껴져서 일게다. 통과하기 힘든 난문처럼 어려운 시험일 수 있다. 그러나 며칠 뒤 보내온 동영상에서는 엎드리기 선수가 됐다. 어디 그뿐인가. 천장만 보고 있던 때가 시시하기라도 했다는 듯 툭하면 엎드렸다 되 집기를 자유롭게 한다. 테스트를 통과한 아기는 요즘 기는 연습중이다.

산다는 건 테스트의 연속이다. 시험을 통과하듯 긴장의 연속이다. 탯줄로 공급되는 양분을 먹고 자라는 안온한 삶은 탯줄 분리와 함께 종을 친다. 태아기를 안온하다 표현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어두운 궁창 같은 그 수중 세계에서의 살아남기는 훨씬 더 치열했으니 시험은 그때부터라 해야 맞으리. 그렇게 수정되어 작은 몸이 찢어질 듯 우는 울음과 함께 세상에 나오니 웬걸 이제부터 본격시작이다.

나이가 들어도 시험은 끊이질 않는다. 이 문제는 죽음이 와야만 끝이 난다. 사는 것이 어차피 테스트의 연속이라면 우린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모두 겪는다 해서 모든 사람이 긴장과 스트레스로 사는 건 아니다. 큰 테스트도 유연히 대처하는 이가 있는가하면 작은 일로도 다치는 이가 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서 오기도 하지만 몸의 질병이나 재물의 손해를 입기도 하며, 자식이나 배우자가 속을 썩이기도 한다. 모든 시험들은 결코 녹녹치 않아 만만히 봐도 되는 건 하나도 없다.

오래전에 난 큰 오해를 받아 일주일을 지옥처럼 지낸 적이 있다. 그 분노와 부끄러움은 뼈를 녹이는 고통이었다. 막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 급여를 현찰로 봉투에 담아 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필이면 봉급날 할일이 있어 자취하는 동료의 빈방에서 혼자 머물렀고, 그날 봉급 절반이 없어졌다는 소문이 원내에 퍼졌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날 방에 다녀간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본인이 표현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수행하는 본분으로 삼으라.' 했으니 이러니저러니 따지지 말고 참아야 할까· 당황하여 변명하면서 상황을 모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궁리를 해야 할까. 그 다음 월요일 아침조회시간이었다. 직원이라야 원장을 제외하고 주방 아줌마까지 단 네 명인데 난 고연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그날도 책상만 보며 우울해 있었다. 그런데 그 동료의 이모인 원장이 하얀 봉투를 그에게 주는 거다. 월말이라 보육료 들어오는 대로 급여를 담다보니 절반은 일주일 늦게 주는 거라면서 친척이니 이해하라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나에게 본래 잘못이 없다면 그 허황한 비방은 귀를 스쳐가는 바람이요, 허공을 흘러가는 구름 같으니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억울함을 밝히려고 스스로 변명하면 할수록 상대를 돕게 되는 결과만 될 뿐이다.' 젊은 날 이런 가르침들을 깨달아서 침묵으로 일관했던 건 아니다. 사면초가에 몰리고 보니 어떤 교훈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만, 변명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해 입을 닫고 몸을 망가뜨리며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선인들의 가르침은 옳았다. 그 후 나는 부끄러움과 오해받는 이들을 만나면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며 기다리라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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