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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깊은 밤에 편지를 써보신 적 있으신가· 나는 젊은 시절에 밤마다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세상은 잠들고…. 고요와 친구가 되어 편지를 쓰노라면…. 그대가 되어준 미지의 군인을 향하여 마음이 열리고 세포가 활짝 열리는 경험을 하곤 했었다. 밤에 쓴 편지가 모두 가는 건 아니다. 날이 밝은 뒤 읽어보면 얼굴이 화끈거려 찢어버리기 일쑤이다.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질지라도 펜을 꾹꾹 눌러 쓰던 순수는 참이었다.

밤에 쓰는 편지는 그리움이 너무 진하다. 깊은 밤은 사람을 진실하게 만든다. 게다가 휘영청 달이라도 떠 있다든지 뼈 쏙까지 정화 시켜줄 것처럼 별무더기가 반짝거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내 정서가 맑아지고 정갈해지며 더욱 간절해진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술술 썼고, 밤비라도 내리는 날은 리듬을 실어 쓰면서 행복해했다.

어느 해 가을날, 두 조각 나버린 이별과 함께 라면박스하나가 소포로 도착했다. 그 속에는 내가 보낸 편지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누가 볼까봐 한적한 곳으로 들고나가 성냥불을 그었다. 눈물이 범벅이 되어서 하나씩 내용을 훑어보며 집어넣는데 동네 어른 한 분이 '딱하지….' 하는 눈빛을 보내시면서 말없이 비켜 지나가셨다.

그날, 밤을 지새우면서 써서 부쳤던 수많은 사연들이 불길에 싸여 훨훨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면서 울고 울었다. 그 뒤로 난 수신인 없는 편지를 낙서처럼 쓰면서 마음을 치유해 갔다. 읽어줄 그대가 없던 당시의 밤 편지들은 눈물이 많았었다. 한숨 소리가 너무 커서 끝까지 쓰지 못하고 잠들어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부치지 못한 사연들은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가슴속에 남아서 별처럼 반짝인다. 이름 모를 희미한 별들이 대부분이지만 선명한 별자리처럼 또렷한 내용도 있다.

나는 무엇이 그토록 서러웠던 걸까. 가끔 그날의 이별의식에서 펑펑 흘렸던 젊은 날의 눈물과, 한동안 썼던 수신인 없는 밤편지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에게 첫사랑이라고 이름을 붙여 정을 폭 쏟기는 했지만 얼굴 한번 못 본 사이였다. 펜팔로 편지만 주고받았으니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했다. 그의 체취도 모르고 음성도 모른다. 그가 언제 웃으며 말할 때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기본적인 것조차 모른다.

그럼에도 까마귀 할퀴고 지나간 자리처럼 얼얼한 가슴을 안고 왜 나는 한동안 방황했을까. 한때는 첫사랑이라 설정한 그를 잃어버린 슬픔이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내가 경험한 사랑은 막연한 동경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란 걸 알게 됐다. 지금에 와서 내려지는 결론은 적어도 사랑을 잃은 슬픔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 열정과 순수가 산산이 분해되어 재가 되는 아쉬움, 밤에 편지를 쓰며 행복했던 시간들과의 이별, 그런 감정적 서러움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자편지시대가 도래한 지금 사람들은 손가락으로 콕, 콕, 두드리며 편지를 쓴다. 나 역시 펜으로 편지를 써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루에도 여러 통의 편지를 읽고 삭제하는데 요즘의 편지는 연기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냥 삭제할 수는 없는 정성이 담긴 편지도 간혹 있긴 하나 그 시절처럼 정성이나 감성을 느끼기는 힘들다.

젊은 날의 그런 핑크빛감성과 열정을 담은 편지를 다시 한 번 써보고 싶다. 촉촉한 마음으로 밤새 쓴 편지를 날이 밝은 뒤 부치지 못할지라도 누군가를 향하여 마음과 온몸의 세포가 열리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 내가 쓴 편지가 머무는 곳이 그 어딘지 몰라도, 희미한 별이 되어 날아갈지라도, 때로는 애인이 있는 것처럼 때로는 사랑을 잃은 사람의 심정이 되어서 밤을 지새우며 긴 편지 한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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