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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아들이 막 세 돌을 넘긴 제 아들과 놀아주면서 종이배를 접는다. "시시해요~" 손자가 말한다. "아유! 저는 아버지만큼 못 해주겠어요." 나를 보며 아들이 말한다. 아들은 딱 지금의 제 아들만 할 때 있었던 옛일을 떠올린 것이다.

파란 물빛 같은 날들이 추억에 화답한다. 그날 남편은 스티로폼으로 배를 만들었고, 아들은 대야에 배를 띄우며 놀았다. 배 안에는 나뭇잎 두어 장, 장난감 자동차, 돌멩이 몇 알이 실려 있었다. "우리, 이 배 바다로 보낼까?" 대야 뱃놀이가 시들할 즈음 남편이 제안했다. "어떻게 바다까지 가요?" "냇물에 띄우면 가지?" "정말요?" "아들! 우리 배 띄우러~가자!" "네! 좋아요!" 아들이 노루처럼 뛰었다. 그러다 방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그림책을 가지고 나와 펼쳐 돛단배를 찾더니 이 배처럼 돛을 달자, 태극기도 그려 붙이자, 하면서 흥분했다.

두 남자가 걸어간다. 30대 초반 남자와 어린 아들이 동네 하천으로 간다. 아빠를 따라가느라 바지락 대는 아이 손에 스티로폼 배가 들려져 있다. 그들 머리 위로 펼쳐진 하늘에 낮달이 떴다. 그날따라 달님도 일찍 나온 것을 보니, 잠시 뒤 부자지간에 벌어질 일들과 두 사람이 나눌 이야기가 궁금했나 보다.

두 사람은 충주 지현동과 용산동을 가르며 흐르는 하천에 배를 띄워 보내고 왔다. 부자는 배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고 했다. 보았으리라 들었으리라. 떠나는 배에게 그 둘이 어떤 축복과 어떤 기대의 말을 했을지 낮달은 알리라. "엄마, 우리 배 바다에 언제 도착해?" 잠자리에서 아들이 말했다. "지금도 가고 있을 걸? 아들이 잘 가게 해달라고 기도할래?" 했더니 벌떡 일어나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고는 "하나님, 우리 배 바다까지 무사히 가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잠든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이처럼만 순수하게 세상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날 나는 어린 아들이 장차 저어갈 인생 항해를 위해 기도했다.

어느새 가장이 된 아들에게 휴식이란 없다. 직장 일만도 힘에 부치겠거늘 주말과 퇴근 후 제 아내 쉬라고 아기들을 도맡는다. 아이들이 너무 사랑스러우면서도 부모님 품에 있던 때가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걸 보니 힘든가 보다. 전쟁 같은 일상을 사는 아들을 보면 강한 유혹을 받는다. '아기들을 맡아줄까….'

한번은 의사를 타진했더니 키워 독립시키었지 않냐 하며 손사래 친다. 그렇다. 부모 노릇도 훈련이 필요하다. 사랑도 옹이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야 한다. 나에게도 인내가 필요하다. 스스로 노를 저어가도록 해변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 자연은 바다 속에 밥상을 차려놓고 지켜만 본다. 그 밥상을 향해 돌진하는 건 물새가 할 몫이다. 그렇게 기다려 마침내 멋진 물새의 비상을 보고야 만다. 나도 노 젓는 아들이 창파를 넘어 평화의 섬에 이를 날을 기대하며 지켜만 봐야 한다.

어릴 적에 아들이 띄워 보낸 배는 어찌 됐을까. 아들 기도와 달리 가슴 뻥 뚫리는 망망대해까지 못 갔을 게 뻔하다. 다음을 꿈꾸기도 전에 청소하는 갈퀴에 걸려 산산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 '아니지, 손주를 키우는 정다운 갈퀴가 장애물을 걷어 주며 길을 내주었을 수도 있지….' 그렇다 쳐도 길은 멀고 멀다. 스티로폼 배에게 세상은 가혹했을 게 뻔하다. 현실이라는 크고 작은 암초들에 의해 꿈이 삭둑 잘렸을 가능성이 크다. 삶이 그러하듯 자생력 없는 스티로폼 배가 노래하듯이 얘기하듯이 바다까지 평탄하게 흘러가게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들이 노를 저어간다. 가다가 꿈이 부서진 장난감 배가 아니다. 창파를 헤쳐 가는 거룻배다. 세월에 떠밀려 가는 배가 아니라 자생력과 책임감과 창조력을 요구하는 배다. 바다는 아들에게 낭만만 주지 않는다. 오고 오는 파고를 넘고 나면 밑바닥까지 뒤집고 지축을 흔드는 격랑을 주기도 한다. 항해하는 일은 미지의 세상을 향한 도전이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건, 남이 보지 못하는 걸 본다는 것이다. 평화의 섬은 반드시 도래한다. 견뎌야 한다. 현실이라는 파고에 잠시 뒤집힐지언정 끝까지 노를 잡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격랑이 지나면, 격랑이 지나면…. 은하수가 수를 놓는 수평선을 달빛 아래 미끄러지며 가는 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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