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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청주시 1인1책 프로그램 강사

동창 커튼을 젖혔다. 오늘따라 구름이 한 줄기 빛처럼 찢어진다. 순간 내 마음도 빛줄기처럼 갈라진다. 한 자락 추억이 일렁인다. 조 밭에 있는 강아지풀처럼 뒤섞인 푸른 감정의 색채를 따라가 본다. 누군가 있다. 그리움이 오는 시간은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움직임 또한 자유로워 시간과 공간을 넘어 무시로 오곤 한다.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듯, 내 의지와 상관없이 아무 때나 불현듯 온다. 그리움의 길목 끝에는 늘 손님이 있다. 카톡에서 그 손님 이름을 클릭하여 대문 사진들을 밀면서 본다. 남색 원피스를 입은 다정한 형님 모습이다. '그랬지…. 이 모습이었지….'

그 시절 내 마음은 봄 산에 피는 꽃동산이었다. 우린 매일 만나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열었다. 좋은 관계는 그냥 알 수 있다. 내가 그랬듯 형님도 나를 특별히 여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 날 형님 가정사를 듣게 됐다. 위로 언니가 있었는데 새파랗게 젊은 날 하늘로 가셨단다. "세 살 된 딸을 두고 어찌…." 형님 얼굴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님은 어린 조카를 친정어머니와 함께 키웠단다. 형부는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홀로 사시며 돈을 벌어 딸 교육 뒷바라지를 했단다. 아기는 엄마 체취를 닮은 이모를 따르며 퇴근하는 이모를 목을 빼고 기다렸단다.

그날, 조카가 장성하여 음대를 졸업한 후, 이모 집에 왔었고 나와 인사를 나눴다. 어느 날, 나는 준수하게 자란 우리 담임목사님 아들 전화번호를 형님께 드렸고, 형님은 아리땁게 자란 조카 전화번호를 내게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했다. 아버지가 장로님이라 그런지 신학대학을 졸업한 신랑감과 만나자마자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정이 세워져 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속내를 털었다. 날이 밝으면 누구로부터 전화가 올까 걱정이 앞섰다. 형님은 애지중지 키운 조카가 불행한 것 같다며 커피 마시러 갈 때마다 하소연하셨다. "목회자 사모 감 며느리를 원했는데…." 하고 목사님 사모님도 내게 하소연하셨다. 아내를 사랑하나, 이 상황들이 너무 당황스럽다며 신랑도 내게 상담을 해왔다. 이모에게 속내를 털었더니 그 여파로 형님과 나 사이가 벌어지는 것 같다며 신부도 대나무 숲을 나로 바꾸었다.

네 사람 입장을 번갈아 듣는 일이 버거웠다. 급기야 그들 가정이 깨지면 어쩌나 걱정될 정도였다. 대나무 숲이니 듣기만 하면 될 것을, 나는 각사람 입장들을 변명해주느라 전전긍긍했다. 이런 상황이 길게 이어졌다. 두 사람 삶에서 어른들만 빠지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잘 살지 싶었다. 하지만 나의 신앙지도자인 사모님과 나보다 다양한 인생을 겪은 형님께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형님과 즐기는 커피타임 간격을 두다 접게 됐다. 그것이 많이 서운하셨나 보다.

봄 산에 수차례 꽃이 피고 졌다. 커피타임을 접은 지 몇 해가 흘렀다. 시간은 모두를 성장시키고 정리도 시킨다. 젊은 부부는 양가 어른들을 떠났다. 아니, 어른들이 보냈다. 두 아이 부모가 된 그들은 서울 대형교회에서 촉망받는 부목사로 재직 중이다. 그런데 형님과 나는 바라만 보다가 서로 닮아버린 호수와 산처럼 되어 버렸다. 그리고 최근에 형님이 인천으로 이사 가셨다는 소식이 바람결에 들려왔다.

푸른 얼음 성체처럼 초록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영롱한 추억들은 아직도 투명한데, 형님은 청주에 안 계신다. 그때는 그랬다. 감정의 흐름도 물과 같아서 흐르는 거지 했다. 서로 진심이었으니 지금의 간격은 시냇물이 거친 들을 지나는 과정이려니 했다. 그렇게 흘러 강을 지나 한바다가 되듯이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려니 했다.

삶의 궤적에서 사람이 남긴 향은 꽃보다 오래간다. 그 향이 이리 고울 줄이야.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짙을 줄이야. 산다는 건 모름지기 잃음과 생산이다. 젊은 날 커피타임을 하고 함께 산에 오르는 시간을 잃었으나 새롭게 한 가정이 탄생했다. 잃은 시간이 남긴 추억을 그리며 사진들을 옆으로 밀면서 다시 보다가, 형님도 나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간 발간한 책 표지들을 찍어 카톡 대문에 올렸다. 내 사진을 보는 숨을 느낀다. '여전히 글을 쓰고 있군….' 하는 음성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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