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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칼도마 다리한쪽이 부러져 남편에게 못을 박아 달랬더니 아예 새것으로 사왔다.

반질거리는 새 도마에게 밀려 정든 도마를 버리게 됐다. 어머니가 혼수로 사주신 도마와 헤어지려니 서운하다. 도마 구석구석에 칼자국이 수없이 겹쳐졌다. 뚜덕거리며 무채를 썰다 선홍 피가 도마에 흐르기도 했던 주부초년생이, 빗살처럼 빼곡한 세월의 흔적 따라 이젠 손을 베지 않고도 다다거리며 가늘게 채를 잘 도 썬다.

내 고향 동네 앞으로 경부선이 지난다. 초등학교 삼학년 때였다. 대전에 가신다고 나가신 아버지는 두 동강이 난 백구(개)를 안고 들어오셨다. 그날의 충격이라니…. 촐랑촐랑 아버지를 따라 나섰던 백구가 기차에 변을 당한 것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뒷동산에 백구를 묻고 초상이라도 난 듯 울었다. 학교 같다 오면 꼬리치며 달려 나오던 털이하얀 백구 환영이 집안 구석구석에 있어 한동안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거참, 또 한 바퀴 돌고 왔지 뭐야…." 남편이 말하며 들어온다. 요즘 우린 귀가 할 때마다 전에 살던 집으로 갔다 돌아 나오는 일이 잦다. 이사 온지 한 달이 넘었지만 습관적으로 가곤 한다. 방향이 전혀 다르거나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이사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아파트로 옮겨서 그러지 싶다. 두 아파트가 거의 마주보고 있어 정문근처까지 와서 막판에 왼쪽오른쪽으로 갈라진다. 맥 놓고 있다간 여지없이 전에 살던 집으로 간다. 어떤 날은 현관에서 정신 차려 돌아온 적도 있다.

어느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가 이보다 정확하랴. 23년간 매일 서너 번은 족히 드나들었으니 횟수로 말하면 뼛속까지 새겨질 횟수요, 뇌세포마다 빼곡히 저장돼서 자동이 된 거다. 이제부턴 새 아파트로 가라고 뇌에 입력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을 줄이야. 생각은 정리했음에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에 새삼 공감한다. 이쪽으로 가, 하고 생각을 조절하지 않고 몸이 자동으로 되려면 시간이 필요한건가보다.

산다는 건 이별연습이지 싶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떠나보내면서 산다. 그것이 물건이거나 시간, 공간 일 수도 있고, 반려동물이나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큰이별이든 작은이별이든 어떤 이별이든 이별은 슬프다. 사소한 물건이나 공간, 애완동물과 이별도 그러하거늘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랴…. 요즘 우울하다. 십년동안 새벽마다 주일마다 교회에서 만나 정이든 사람과 필연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이별을 해야만 한다. 여러 종류의 이별을 수없이 경험하며 살았음에도 우울함이 이어진다.

이별해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자 생각하지만 함께한 시간들과 정을 나눈 추억들이 아리다. 한 달이 지났어도 몸이 옛집으로 향하듯,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것보다 몸이 그리워하는 것이 더욱 힘든 일이더라는 말이 실감난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무덤가의 큰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한 시인도 있다. 가족을 묻는 무덤가의 큰이별도 언젠가는 그 슬픔이 풍화되어, 울지 않고 담담하니 꽃을 들고 무덤가를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켜켜이 쌓인 정을 끊는 일이 당장은 힘들어도 시간이 지나 정녕 쓸쓸히 풍화 되는 것이 인간세상의 일이라면, 행복을 비는 기도를 해야 할까 보다. 신이 우리에게 주신 유익함으로 받아들여야 할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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