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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9.21 14:13:11
  • 최종수정2015.09.21 14:13:17

임미옥

작가

자리가 주는 메시지가 그 어떤 언어보다도 통념상 강하게 어필돼 올 때가 있다. 지난 3일 중국의 '항일(抗日) 전쟁 및 세계 반(反)파시스트 전쟁 승전70주년 기념행사' 에서 각국 정상과 국빈들 자리배치 구도가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박근혜대통령은 이날 오전, 60년 전에 김일성이 섰던 톈안먼 성루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나란히 올랐다. 박 대통령의 자리는 성루에서 광장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 주석의 오른편 두 번째에 마련됐는데, 이는 블라디미르푸틴 러시아 대통령 다음이다.

이날 자리배치 의미는 박 대통령의 높아진 외교위상이라고 각 언론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한때 혈맹관계였던 북한의 최 비서는 이번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이는 중국 외교정책 '방향추'가 북한에서 한국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시 주석이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혈맹이었던 북한 손을 서서히 놓으면서, 반면 자국의 경제적 이익 창출 목적 유대가 돈독해지고 있는 한국 손을 더욱 끌어당기는 외교지형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자리가 주는 분명한 메시지다.

"법조인이라는 자부심 하나만으로도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넉넉했습니다…." 남편이 공직 생활을 퇴직할 때 낭독했던 고별사 내용 중 한 토막이다. 그간 수고했다 말했더니 최선을 다해 근무했으니 여한은 없다만 남은 세월 살아가야할 문제보다, 그 자리만으로도 당당했었던 지난 세월들과 이별하는 아쉬움이 더 크다 말했다.

나그네 인생길에서 더러는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가기도 해야 한다. 반평생을 바쳤던 직장을 떠나는 아쉬움을 접고 남편은 최근 개인 사무실을 냈다. 사랑이 온다. 사람이 온다. 사무실 개업을 앞두고 난(蘭)을 비롯해 각종 화분들이 줄줄이 배달돼 온다. 감동이다. 크고 작고를 떠나 지인들의 마음을 담아 화분에 묶여오는 리본에 쓴 이름 하나하나를 대할 때마다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화분이야 화원에서 왔다지만, 퀵 서비스를 따라 수백 리 길을 날아온 따뜻한 마음들도 있다. 축하해주러 지인들이 사무실을 방문하는 시간대가 달랐다. 남편이 바쁘다. 화분들 자리를 수시로 바꿔 배치하느라 분주하다. 다녀간 사람 이름이 달린 화분은 사이드로 옮기고 장차 올 사람의 화분은 잘 보이는 곳에 둔다. 그도 그럴 것이 방문자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본인 이름의 꼬리표를 두리번거리며 찾아 바라보곤 했다.

개업 분위기가 가시자 화분에 매달았던 리본의 이름들을 메모 해둔 뒤, 리본을 떼어내는 작업을 하는데, 아뿔싸! 내 친구 이름이 적힌 난 화분이 다른 화분에 가려진채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럴 수가…. 눈에 띄지 않은 걸 보면 배달하는 사람이 분주한 틈에 슬그머니 갖다 놓았는가 보다. 그 친구는 이미 다녀갔는데 화분을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하기는커녕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했다.

남편이 화분을 옮기는 행위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내가 보는 견지에선 적어도 위아래 구도는 아니다. 경제 분야에서 양국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자는 의사 표현도, 시 주석이 표방하는 대국굴기의 중요한 파트너로 삼겠다는 의지의 피력 같은 거국적인 뜻도 아니지만, 방문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있었다. 고맙다, 당신은 나의 중앙에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친밀한 우정을 기억하겠다, 등등의 분명한 언어였다.

자리배치에 관한 이야기는 성경에도 있다. 요한의 어머니는 두 아들을 예수 바로 옆에 앉혀 달라 했다. 치맛바람까지 동원해 청한 것을 보면 자리에 의미 두는 일은 2천 년 전에도 치열했지 싶다. 예수께선, 권위란 얼마나 많은 사람을 거느리느냐가 아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섬기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일축하셨다. 내 친구가 보낸 난을 책상에 올려놓았다. 나는 앞으로 친구를 섬기는 맘으로 난에 물을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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