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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8.10 13:14:24
  • 최종수정2015.08.10 14:10:09

임미옥

작가

옥수수의 계절이다. 옥수수가 풍년이라 행복하다. 먹을거리가 넘치는 풍요로운 세상이고, 현대인들 입맛에 맞춰 속전속결의 간식들이 넘쳐나지만, 옥수수만큼 시대를 넘어 남녀노소 모두 좋아하는 간식거리도 없을 거다. 임신한 이웃집 새댁은 밥을 재껴두고 먹을 정도로 좋아하여 남편이 퇴근할 때마다 한 봉지씩 들고 온다.

우리 집에는 옥수수가 냉동고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옥수수 농사를 짓는 지인들이 주변에 몇 있어서 골고루 사다보니 일 년 내내 옥수수를 먹으며 산다. 30개 기준으로 자루에 담아 파는데 가격 부담이 크지 않아 이보다 만만한 것도 없다. 수분이 마르기 전에 한꺼번에 삶아 냉동해 놓고, 손님이 오거나 가끔 주전부리가 하고 싶어지면 서너 개씩 꺼내어 살짝 김을 올려 먹으면 금시 따온 것처럼 맛이 좋다.

우리나이쯤 되면 여름밤에 옥수수 먹던 추억 한 자락씩은 거의 가지고 있을 게다. 마당엔 멍석이 깔려있고, 아버지는 모깃불을 놓으셨다. 해가 넘어가 아이들이 멍석으로 모여들면 약속이나 한 듯 별들도 따라 총총 나왔다. 해지기 전에 먹은 저녁밥이 소화될 때쯤 어머니는 대소쿠리에 옥수수를 담아 내오셨다. 우리 집엔 아이들이 너 댓은 됐는데, 어른들의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잠들던 그 시절이 그립다.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보이는 사내아이가 옥수수를 먹으며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입주한지 일 년이 돼가도 몇 층사는 누구인지 모르고 지낸다. '맛있게 먹는 구나….' 아이가 귀엽기도 했지만 인사도 할 겸 말을 걸었다. '000! 너…어? 그리 지저분하게 먹지 말랬지, 아줌마가 흉보잖아!' 예민한 목소리다. '흉보는 거 아니고… 귀여워 칭찬하는 거야. 알았지?' 낯선 아줌마 앞에서 지적 당해서 그러지 뚜한 표정이 되는 아이를 보며 내렸다. 고연히 말을 걸었나싶어 무안한 생각이 든다.

교회 여름성경학교 때마다 빠지지 않고 주는 최장기 간식 메뉴 순위 1위가 당연히 옥수수다. 올해도 달달한 물에 소금기를 약간 넣어 삶아 냈더니 아이들이 함성을 지른다. 초등학교 3학년들이 올망졸망 모여 옥수수 먹는 걸 바라보았다. 옥수수하나 먹는데도 다양한 세상을 보는 것 같다. 쥐처럼 여기저기 파먹는 아이가 있는가하면, 한쪽에서부터 먹는 아이, 손으로 똑똑 따먹는 아이가 있다. 참 사랑스럽다.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옥수수를 반쯤은 남긴 채 여기저기 개걸개걸 파먹는다고 지청구 듣던 아이가 생각났다. 아이는 입맛이 떨어진다는 듯, 입 안 가득 옥수수 알을 물고 반항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 입장에선 할 수 있는 말이다. 내 자식이라도 알뜰히 먹지 않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마구 파먹으면 한 마디 안할 리가 없다. 그런데 지적이 아이에게 먹혀들지 않고 스트레스만 받는 표정인 것이 아쉬웠다. 지당하고 좋은 말도, 화자 청자가 좋은 분위기로 소통이 될 때 효과가 있는 것을….

주말에 가족들이 모였다. 며느리 사위 모두 모이면 우주가 여섯이다. 멍석도 없고 모깃불은 없지만, 간식으로 옥수수를 냈더니 먹는 방법이 다양도 하다. 아들과 남편은 굵은 쪽에서부터 먹어가고, 새 애기는 가는 쪽에서부터 먹는다. 딸은 어려서부터 똑똑 앞니로 따 먹더니 여전히 그리 먹고, 사위는 하모니카 불듯 길게 줄을 내며 먹는다. 나는 앞니에 끼는 것이 싫어 딸처럼 서너 알씩 따 입으로 던져 먹는다.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 잔소리는 존재한다. 조카들처럼 신나게 먹을 것이지, 손으로 따서 깨작거리면 어느 세월에 남들만큼 크겠느냐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보다 두 살 적은 반백머리 남자조카는 키가 180센티를 훌쩍 넘고, 내 키가 150센티인 것이 옥수수 먹기와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큰 사람만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세상이 아름다운 건 작은 사람 큰 사람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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