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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텅 빈 초겨울들판에 서있는 감나무에 남겨진 서너 개의 감, 무슨 까닭으로 남겨져 모진 눈보라와 바람을 견디는 건가. 남겨둔 이의 뜻대로 정말로 까치가 지나갈 때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건가. 앙상한 나무 끝에 최선을 다해 매달려 서로를 보듬고서 흔들리는 위태위태한 풍경에서 한편의 시를 읽는다.

택배가 도착했다. 감상자다. 시가 내 집으로 내려왔다. 열하나, 열둘, 서른 셋, 주홍감에 담긴 은혜 수십 알이 수 백리 날아왔다. 한 알 한 알마다 연세를 가늠치 못하도록 홍안이신 감을 보낸 분이 서려있다. 정을 담으면 사물 그자체가 시 이듯, 주홍 감들은 시어가 되고 나는 언어에 흥건히 취한다. 곰곰 생각해도 시처럼 살면서 나누기를 좋아하는 그분의 은혜일 뿐, 나는 귀한 선물을 받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기도문을 써서 시 같은 감상자에 붙였다. 부디, 지금처럼 나이는 잊고 건강은 잃지 말고 행복하시기를…. 부디, 먼 거리지만 마음은 가까이 내 곁에 오래 계셔 주시기를…. 베란다에 박스를 펼쳐놓고 가지런히 감을 늘여 놓았다. 그 뒤 외출했다 돌아오면 감들의 안부가 궁금하여 베란다를 내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정이 익는다. 그분의 마음이 내안에 시가 되어 녹는다. 주홍빛이라지만 노란색에 가깝게 탁하던 감들이, 일몰하는 태양처럼 말갛게 익어 가는 걸 보며 나는 겨우내 시를 읊을 것이다.

감이 익어간다. 하루 한 번씩 말랑말랑하게 익은 감을 골라 두 손으로 감싸 들고 감의 무게를 느껴본다. 묵직한 것이 손 안에 꽉 찬다. 힘을 주면 터질 것 같은 감을 소중히 접시에 담아 소파에 앉았다.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에 넣고 오물거린다. 부드럽고 찰진 감의 살맛이 입 안 가득 번진다. 혀를 굴려 감 씨를 발라냈다. 사람으로 치면 은밀히 숨겨둔 마음 같은 곳이라고 할까. 씨를 감쌌던 부분의 질감은 최고다.

감은 사모의 정을 불러내기도 한다. 말갛게 익은 홍시를 먹노라면 눈물이 난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뒤 안에 있는 감나무에서 일찍 익은 조홍감을 따다 나에게 주시곤 했다. 세상과 영원히 이별할 날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그날, 음식을 거부하시던 어머니가 홍시를 찾으신다고 올케가 말했다. 지금 같으면 계절과 상관없이 구할 수 있을 것을, 그때만 해도 유월이라 홍시를 구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매일 홍시를 먹고 있는데…. 감을 먹다 말고 옛 문인이 남긴 사모의 시를 읊는다.

"盤中(반중) 早紅(조홍)감이 고와도 보이 나다. 유자 아니라도 품음 직도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을 새 그로 설워하노라"(노계 박인로) 조선 후기, 노계가 한음이덕형을 찾아 갔을 때, 그의 아내가 소반에 일찍 익은 홍시를 내왔다. 옛 문인들은 술은 물론이거니와 간식거리를 대하고도 글 짓는 걸 즐겼는가 보다. 노계는 잘 익은 조홍감을 보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위의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효자로 소문난 오나라 사람 '육적'이 여섯 살 때 원술을 찾아갔을 때였다. 먹으라고 내놓은 유자 중 세 개를 몰래 품속에 넣고 하직인사를 하다 유자가 굴러 나와 발각되었는데, 원술에게 집에 가지고 가 어머님께 드리려 했다고 대답을 하여 좌중이 그의 효심에 다시 한 번 감격했다는 이야기다. 육적은 유자를 품에 감추어 갖다드릴 부모님이 계셨지만, 글을 지을 당시 노계에겐 감을 남몰래 품어 가도 드릴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는 서러움을 표현한 시조다. 아침마다 따다 주신 조홍감을 철없이 혼자만 먹었던 나 역시 철들고 보니, 감을 대접해 드릴 부모님은 계시지 않다. 시 같은 감을 먹으며 그 옛날 중국꼬마의 일찍 익었던 시근이 부러워 목이 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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