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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장거리를 달리다 기름을 채우려고 주유소로 들어갔다. 화장실에 가니 남녀구분 표시가 없어 무심코 문을 열었는데, 아뿔싸! 길쭉한 남자소변기가 장승처럼 벽에 서 있는 거다. 흠칫 되돌아 나왔는데…. 보았다. 아니 사진처럼 찍혔다. 찰나에 읽어버린 글귀들이 뇌리에 맴돈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의미를 깨닫곤 웃음이 나왔다. '진짜! 남자들은 왜 그래?' 아들과 남편이 화장실을 사용한 뒤, 따라 들어간 딸이 투덜거리던 말이 생각나서다. 두 남자에게 잔소리해보았지만 개선되지 않아 잔소리를 중단하고 따라다니며 닦아내곤 했었다. 지난 것은 사소한 것도 그리움이다. 아이들이 분가해 나간 지금 그 일도 이젠 한가하다.

잔소리를 하다가 내가 뒷마무리를 하게 된 건, 그들의 신체구조를 이해해서이다. 가정용변기가 구조적으로 정상적이고 건강한 남자라면 소변이 튀도록 되어 있다. 여성과 달리 그들에겐 공을 들여 소변을 봐도 튀지 않을 수 없잖은가. 그런데 '남자가….'라는 수식어는 공중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그들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다.

"남자답게 강하고 담대해라…." 신생아실에서 갓 나온 아들을 안고 남편이 했던 말이다. 아들이 세상에 나와 제일 먼저 들은 말이기도 하다. 그 후로 "남자가 그게 뭐야? 씩씩해야지." 등등 아들을 향한 주문은 늘어갔다. 친구와 다투고 역성들어 달라 울고 오면 "사내 녀석이 네 방어도 못하냐?" 하고 나 역시 한 술 더 뜨곤 했다.

시골집 가는 길목에 남편이 다닌 초등학교가 있다. 아들이 서너 살 무렵 집에 가다가 남편은 쉬어가자면서 학교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곤 남자는 운동장처럼 넓은 꿈을 가져야 한다면서 아빠가 시오리 길을 걸어 다닌 학교이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는 쌀 한말 짊어지고 충주로 나가 자취하며 열심히 공부했다고 아들에게 설명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을 넘어서 의지가 굳고 강한 남자로 자라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모의 바람과 달리 아들은 툭하면 앙앙 울며 들어오곤 했다. 특히 주인집 손자에게는 하루에도 수차례 얻어맞고 우는 거다. 그때마다 나는 셋방살이 설움 분풀이라도 하듯 아이를 잡으며 맘대로 울지도 못하게 입을 막아버리곤 했다. 한번은 남편이 아이에게 주인집 아들에게 공격하는 법을 부러 훈련시킨 적도 있었다.

"아빠, 이렇게 주먹으로 때려?" 아들이 말했다. "그렇지, 먼저 때리진 말고 그 애가 때릴 때만 알았지?" 그러자 "아빠 그럼 00이가 아프잖아…그러니까 주먹 말고(손바닥을 펼치며)이렇게 펴서 때릴게." 하는 거다. 우리는 웃고 말았다. 선천적으로 되지 않는 부분까지 서너 살 때부터 남자니까 하고 주문하는 어리석은 부모였다.

아들이 너 댓살 무렵엔 이런 일도 있었다. 집 앞 모래더미에서 놀다 슬리퍼를 한 짝 잃어버리곤 울며 들어온 거다. 남편은 사내 녀석이 네 것도 못 챙기느냐 면서 역시 남자란 이유를 붙이며 아이를 질책하여 내몰았다. 따라 나가니 "내 꺼가 없어 졌어…" 하고 울며 모래더미를 헤치고 있다. 아이를 데려다 씻겨 낮잠을 재웠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거침없이 재잘대던 아이가 자고 나더니 눈을 깜박이며 모든 단어 앞에 내꺼 라는 말을 넣어 더듬으며 다음 문장을 잇는 것이다. "내꺼… 엄마 내꺼… 밥 줘. 내꺼… 아빠 내꺼 물 줘" 하고 말이다. 그길로 병원에가 상담했다. 일시적 충격이라 바로 회복됐지만 지금 생각해도 혼비백산(魂飛魄散)할일이다.

왜 그랬을까. 남자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면서 온갖 자제를 요구했던 무지가 후회스럽다. 남자도 울고 싶으면 맘껏 울고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때론 약한 모습으로 다가와 부모 품에 안기게 둘 것을…. 아들에게 미안하다. 아기가 되어 다시 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버린 아쉬운 날들은 후회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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