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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7.20 14:04:23
  • 최종수정2015.07.20 14:04:29

임미옥

작가

그해겨울 '무의도' 해변은 인적이 드물었다. 저만치 동그란 섬 '실미도'가 조용히 겨울 풍경에 젖어있었고, 마침 물때가 '무의도'에서 '실미도'까지 걸어들어 갈 수 있도록 바다가운데 길이나 있었다. 수평선 물빛이 저녁나절햇살에 반사되어 거무스름했다. 내륙에서 자라 바다를 모르는 나는 바다색이 검을 수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큼직한 돌다리를 폴짝폴짝 밟으며 바닷길로 올라 '실미도'를 향해 걸어갔다. 이데올로기 시대에 오점을 남긴 그 섬에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천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유명해진 섬이다. 사십년 전, 있지도 않은 약속을 믿고 그 곳으로 갔다가 이슬처럼 사라진 젊은 영혼들…. 음산한 겨울바다의 일렁거림 속에서 바다가 품고 침묵했던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실체와 조우하면서 그날 걸었었다.

바닷길은 평온하여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세상은 그랬지. 대교가 동강나기 직전 에도 백화점이 무너지기 직전에도, 사람들의 일상은 평화로웠지…. 중간쯤에서 해산물채취 바구니를 둘러메고 잰걸음으로 나오는 아낙네와 마주쳤다. "빨리나가요. 물 들어와요…"건조하고 하얀 신작로에 물이 들어온다니 실감나지 않았다. '실미도'를 지척에 두고 발길을 돌리자니 아쉬웠지만, 현지인의 말이기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때, 모두 나가는데 저 끝까지 다녀오는 동안엔 문제없다며 연인둘이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나가자고 권하고 재차 강하게 권했지만 괜찮다며 들어간다. 지형적 영향으로 실미도 뒤에서 밀려온 물은 양쪽을 휘돌아 밖으로 나와 해변에서부터 금시 차들었다. 물길은 빠르게 돌다리를 덮고 하얗던 신작로가 삽시간에 바다가 됐다. 저만치 두 사람이 그제서 혼신을 다해 뛰어나온다. 뛰고 뛰어도 육지와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 않고 급기야 바다 속에 갇혔다. 물살은 그들 무릎을 적시고 허리까지 찼다. 여자를 업고 넘어졌다 일어섰다 반복하면서 기신기신 나와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저게 뭐야 이 한겨울에…. 가슴을 쓸다보니 나 역시 경험자의 권고를 무시하여 겨울 산 눈 속에서 조난당할 뻔 한적 있었으니, 철없기로는 저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대관령북쪽 백두대간 주능선에 우뚝 솟은 '선자령'의 파란 잔디와 양떼목장의 빼어난 이국적 풍경은 몇 번 보았지만 그곳의 겨울 풍경이 궁금했었다. 신선,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를 뜻하는 선자(仙子)령의 겨울풍경은 생각만으로도 설렘직했다.

한겨울에 찾아간 그곳은, 넓고 푸른 초원은 사라져버리고 하얀 눈 나라가 꿈속처럼 펼쳐져 있었다. 뾰족 날개 끝에 빨강노랑 립스틱을 칠한 것 같은 풍력발전기들이 능선마다 서서 윙윙 울어대는데, 그 기세가 창공을 뚫을 듯했다.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에 우뚝우뚝 서서 도는 바람개비들과 설경의 어우러짐이 몹시 강렬했었다.

'지정 코스만 트래킹하고 반드시 되돌아 와야 합니다!' 산악대장이 설명하는데, '한번 간 길로 다시 내려오는 건 재미없는데….' 그와 나는 동시에 말했다. 하얀 빙 벽 길을 걸어 설국으로 들어갔다. 설원가득 흩어지는 두고 이들을 향한 그리움마저 낭만으로 여겨졌다. 설 벽 끝 암갈색 겨울나무 한그루가 슬픔처럼 아름다웠다. 날개를 멈춘 바람개비처럼 얼마간은 이대로 시간이 정지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잠시 뒤, 낭만은 두려움의 색채로 변했다. 모두 함께 가는 길을 두고 외지고 험한 능선을 늘여서 타고 싶었던 것은, 자연에 대한 오만과 객기라기보다는 스스로의 표정을 고집하고 싶음, 나답고 싶음이었다. 뭔가 잘못됐지 싶었지만 멈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치기와, 무지가 겹쳐 진행했었다. 우리는 허리까지 차오른 눈밭에서 헤매면서 얼마나 잘못 된 오판을 했는지 절절히 느꼈다. 자연을 얕보고 코스를 이탈한 만용의 대가로 가슴조리며 고생해야 했다. 다행히 빠져나오긴 했으나, 무지가 오만을 낳아 치켜들었던 머리를 들지 못하고 일행들에게 사과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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