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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10.01 12:46:02
  • 최종수정2024.09.30 18:04:43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빈센트 반 고흐의 명화 '해바라기'가 수프테러를 당했다. 런던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해바라기 유화 두 점에 오렌지색 수프를 끼얹은 범인은 영국의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Just Stop Oil)' 소속 활동가 3명이다.

놀라서 만행을 말리는 관객들의 비명을 무시하고 그림에 테러를 가한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되면서도 할 일을 했다는 표정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SNS에 범행 영상을 자랑스레 올리기도 했다.

이 단체가 반 고흐 작품에 수프를 투척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2년 10월 단체의 활동가 2명은 같은 작품에 토마토 수프를 끼얹는 퍼포먼스를 벌여 처벌을 받은 바 있다. 그림이 유리액자 안에 있어 별 피해가 없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이 단체는 이에 그치지 않고 곧 이어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 전시 중이던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에도 같은 테러를 시도했다.

예술품 테러에 재미가 들린 이들은 점점 대담해졌다. 지난 2023년 4월에는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광장의 바르카치아 분수대에 먹물 테러를, 2023년 11월에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비너스의 단장' 보호유리를 안전 망치로 깬 후 "이젠 말이 아니라 행동할 때"라고 외쳤다. 2024년 6월엔 오렌지색 페인트를 뿌려 스톤헨지를 훼손했다.

환경단체 '저스트 스톱 오일'이 요구하는 것은 '석유·가스 개발의 중단'이다. 활동가들은 명화 테러를 하다 구속된 동지들을 '양심수'라 칭하며 자신들의 행동이 미래에는 올바른 평가를 받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2022년 처음 반 고흐 작품에 토마토 수프를 뿌리고 처벌을 받은 '피비 플러머'와 '안나 홀랜드'는 모두 20대 초반의 새파란 청년이다. 각각 2년과 2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자 '플러머'는 반성은커녕 "예술과 생명 중 어느 것이 더 가치 있느냐"고 되려 따져 물었다.

그림을 보호하는 것보다 지구와 사람을 보호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그들이 수프를 그림에 던진 이유는 연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수프 한 캔을 데울 여유조차 없는 가난한 사람들을 알리고자 함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시위를 위해 예술품을 훼손했으니 명백한 '반달리즘(Vandalism)'이다. 일반적인 반달리즘은 '고의 또는 무지에 의한 공공물 등의 오손'을 의미한다. 범죄학에서는 이를 '정신적 성숙이 신체적 성숙을 따르지 못하고 나타나는 부적응적 심리 상태에서 나타나는 문화 거부와 폭력적 반항 행위'라 정의한다.

무심코 설치물을 걷어차거나 오토바이 폭주로 위협하는 행위 역시 일종의 반달리즘이다. 무지로 인한 반달리즘의 사례로는 숭례문 방화사건 등을 들 수 있다.

반달리즘은 5세기 초 반달족의 행위에서 유래되었다.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은 서기 429년∼534년, 훈족을 피해 이동하며 갈리아를 황폐하게 만들었고 455년 로마에 쳐들어가 로마의 재산과 문화재를 탈취했다.

반달족의 약탈사례는 다른 민족의 문화재 파괴행위보다 심할 것이 없었으나 거대 로마의 땅과 귀족의 재산을 빼앗았다는 사실이 당시로선 상상하기 힘든 충격이었기에 반달족은 문화파괴자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자행된 반달행위 중 가장 어이없는 사례 중 하나가 벼루를 만들기 위해 남의 비석을 훼손한 행위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이 벼루를 만들기 위해 질 좋은 비석을 몰래 깨뜨려 썼다고 한다.

신라 29대 태종무열왕릉비는 비석의 몸통이 없다. 조선 성종 시기까지도 경미한 훼손이 있긴 했으나 보존돼 있던 비석의 몸통은 조선의 선비들에 의해 파절되었다. 역사유적인 태종무열왕릉 비석을 벼루로 만드는데 사용한 경주지역 유생들을 엄하게 꾸짖는 퇴계 이황의 편지로 이러한 사실이 밝혀졌다. 왕릉의 비석을 갈아 벼루로 만든 간 큰 선비들이 평범한 비석들을 어찌 훼손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반달리즘은 중범죄행위다. 특히 예술작품이나 문화재를 훼손하는 반달행위는 더욱 무겁게 죄를 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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