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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논설위원

한 번 감염되면 약도 답도 없다는 정치인 직업병이 '난가병'이다. 여느 바이러스 질병과 마찬가지로 완치가 어렵다. 간혹 제 풀에 소멸하기도 하지만, 보통 때는 숨어 있다가 선거철만 되면 슬금슬금 기어 나와 창궐한다.

난가병은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혹시 난가?'하는 망상에 사로잡힌 병이다. 자신이 적격자라고 착각하는데, 참신한 인물이 필요하다거나 올바른 리더십에 대한 여론에 접하면 확신이 더욱 강해진다. '이건 내 이야기야' 혹은 '내가 아니면 안 된다며 나를 부르는 말이군' 등의 근자감에 병자는 더없이 황홀하다.

일단 남의 충고를 개 무시하는 것이 난가병의 초기 증상이다. 비위를 맞추며 아부하는 교언영색에는 눈과 귀가 열리지만 거슬리는 충고엔 청맹과니에 귀머거리인 척 돌변한다.

일반인도 간혹 '난가병'에 노출될 수 있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마다 자신이 가장 앞자리 중심에 서려고 기를 쓰거나 거울을 보며 제 모습에 가끔 감탄한다면 감염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러고 보니 제 발이 저린 항목들이다.

난가병은 대중의 관심에 목말라하는 점에서 연예인병과 닮았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끊임없이 관심을 받고 싶어 몸부림치는 부류다. 자뻑에 빠지기 쉬운지라 대중 앞에 서면 두 발이 공중에 떠 이성을 잃게 된다. 누군가 예의상 박수라도 쳐주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믿으며 우쭐해진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다보면 고질병이 된다.

MBC 라디오 팝음악 프로그램인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진행하는 인기 DJ 배철수가 최근 방송에서 '난가병'을 거론했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음악캠프 작가가 쓴 원고를 배씨가 전달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배철수는 "현대인의 난치병이 된 질병 중 하나가 '난가병'"이라고 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잘 나타나지 않고, 객관적 자기 평가를 잘 못 하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발병한다며 보통 사람들은 '아니, 난 아니야. 난 그런 그릇이 못 돼' 라는 주제 파악으로 난가병을 예방하지만 특정 집단의 인물들은 메타인지능력이 떨어져 자주 과대망상증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배씨의 발언에 대해 시청자들은 '현재 정치 상황을 빗댄 발언'이라는 해석을 했지만,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 '콘클라베'에 대한 평이다.

국내 상연 중인 '콘클라베'(Conclave)'는 작년에 개봉한 스릴러다. 교황이 갑자기 선종하자 로렌스 추기경이 단장이 되어 새 교황을 선출하는 비밀선거인 '콘클라베'를 준비한다.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 모인 전 세계의 추기경들은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해 파벌과 모략을 펼치는데, 영화는 콘클라베 뒤에 감춰진 다툼과 교활한 음모, 배신, 탐욕을 까발리고 있다. 로버트 해리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배철수는 '아, 난가? 정말 내가 교황 적임자 인가?'라고 생각한 로렌스 추기경이 투표용지에 자기 이름을 써넣자 하느님이 천장 창문을 박살내 너는 아니라고 응답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소개했다.

이어서 "빈자리를 놓고 '어? 저 자리에 적임자가 난가?' 헛꿈을 꾸는 사람들이 보인다"며 난가병을 예방하기 위해선 자기 성찰을 잘해야 한다고 했다. 영화를 설명하는 것으로 말을 마쳤으면 하등 논란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헛꿈을 꾸는 사람들이 보인다'고 한 부연 설명은 정치적 발언이라는 의혹을 충분히 살 만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인용 후 십 여일이 지난 지금 '난가병'에 걸린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뛰쳐나와 대권도전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배철수의 지적이 터무니없진 않지만 DJ를 통해 음악방송에서 꺼낼 말은 아니었다. 음악방송에서 듣고 싶은 말은 더욱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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