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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중국의 대표작가 '위화'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피를 파는 한 남자의 신산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이웃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유려한 번역으로 국내에서 인기몰이를 한 '허삼관 매혈기'는 지난 2015년 영화로도 제작됐다. 믿고 보는 배우 하정우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열연했으나 흥행엔 성공하지 못했다.

생사공장 노동자인 허삼관이 사는 마을에서는 피를 팔아보지 않은 남자는 여자를 얻을 수 없다. 결혼의 으뜸 조건인 건강을 확인하는 증거로 청년들은 성안의 병원에 피를 팔았다. 피를 팔러 가는 날엔 아침을 먹지 않고 '배가 아프고 이뿌리가 시큰시큰할 때까지' 물을 마셔댔다. 몸속의 피를 늘리기 위해서다. 피를 빼기 전엔 오줌도 참았다.

허심관은 장가를 가기 위해, 식솔을 부양하기위해, 시도 때도 없이 피를 판다. 심지어는 흑심을 품었던 여자 임분방과 관계를 가진 뒤 여자에게 선물을 사주려고 피를 팔기도 한다. 당치않은 선물로 꼬리를 잡은 임분방의 남편이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통에 부인에게 약점이 잡힌 허삼관이 부인의 눈치를 보며 집안일을 도맡는 장면은 폭소를 참기 힘들다.

한국에서도 돈을 받고 피를 파는 매혈이 1990년대까지 존재했다. 1999년, 매혈은 법으로 금지된다. 몸속의 피를 파는 행위가 넓은 의미의 장기 매매라는 이유에서였다.

1955년 처음 서울 백병원 혈액은행이 문을 열었을 때 병원 앞은 새벽부터 피를 팔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성시였다고 한다. 혈액은행을 공공 매혈장소처럼 이용한 것이다. 매혈을 하러 온 사람들은 먼저 일을 마치기 위해 다투는가 하면 혈액채취 부적격 판정을 내린 의사에게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1975년 고재필 보사부 장관은 혈액 한 병 값이 위스키 한 병 값보다 싼 것을 지적하며 적정 인상을 지시했다. 장관의 지시에 따라 혈액 320㏄는 3500원에서 1만 원으로 세 배가량 인상됐다. 혈액값이 대폭 인상되자 병원들은 넘치는 매혈자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러자 매혈의 부작용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생활고에 의해 매혈을 하는 딱한 처지의 사람도 있었지만 유흥이나 몸치장을 위해 피를 파는 철없는 젊은이들이 생겼다. 용돈을 충당하려 아무렇지도 않게 매혈을 하는 대학생들까지 있었다.

인명사고도 발생했다. 1978년에는 30대 청년이 채혈 후 몇 시간 동안 음주를 하면 안 되는 금기를 무시하고 술을 사 마셨다가 즉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를 팔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보혈과 혈액순환을 위해 볶은 돼지 간 한 접시와 데운 황주 두 냥을 마셨던 '허삼관 매혈기'의 주인공 허삼관은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양만 술을 마셨던 모양이다.

1980년대 들어 정부는 매혈을 공식적으로 중단했지만 암거래는 남아 있었다. 혈액이 워낙 부족하니 단칼에 매혈을 근절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환자의 혈관 안에 다른 사람의 혈액을 주입하는 수혈의 역사는 길다. 선인들은 모든 동물의 피 속에 동물 특유의 성분이 흐른다고 믿었다. 그래서 프랑스 의사 '장비티스트 드니'처럼 순한 송아지의 피를 사나운 정신질환자에게 넣어주는 일도 있었다.

1901년 '카를 란트슈타이너'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하고, 1914년 최초의 항응고제 '소듐 시트로산'이 발견된 뒤 비로소 혈액형과 수혈에 대한 올바른 치료법이 정착됐다. 매년 6월 14일은 '세계 헌혈자'이다. 세계 보건 기구는 많은 생명을 구한 '카를 란트슈타이너'의 위대한 업적을 기려 그의 생일을 헌혈자의 날로 제정했다.

그런데 현재 100% 무상 헌혈로 운영되는 국내 혈액수급이 비상상태다. 급속한 고령화로 혈액 사용량은 늘어나는데 헌혈자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는지라 수혈용 혈액이 바닥나는 혈액대란을 근심하는 상황이다.

혈액대란을 막을 거의 유일한 대안이 중·장년층 헌혈자 비중을 늘리는 것이라고 한다. 헌혈이 가능한 나이는 만 69세인 칠순까지다. 어쩌면 헌혈 경로우대 문구가 헌혈의 집마다 등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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