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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3.26 17:50:37
  • 최종수정2024.03.26 17:50:37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대파는 국, 찌개, 구이, 볶음 등 거의 모든 음식의 필수 향신 채소다. 신선도 즐겨 먹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영양소가 풍부하다. 약이 귀했던 시절에는 뿌리와 비늘줄기를 거담제, 구충제, 이뇨제 등의 약재로 썼다. 대파를 듬뿍 넣은 뜨거운 국이나 대파 차는 초기감기에 효험이 있다.

모든 집 냉장고 야채 칸에 누워 있는 평범한 대파가 최근 총선판을 흔들고 있다. 심지어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는 "윤석열 정권이 좌파도 우파도 아닌 대파 때문에 망할 것"이라는 비판을 했다. 좌파, 우파, 대파가 랩 음악처럼 제법 라임이 척척 떨어진다.

지난 3월 18일 농협 하나로 마트 양재점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대파 판매대 앞에서 875원으로 표시된 대파 가격을 보고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 된다"는 발언을 했다. 그래서 시작된 대파논란은 갈수록 확대 재생산되어 이제 거의 대파전쟁 수준이 됐다.

한국농수산물유통센터 농산물유통정보 기준으로 당시 대파 1㎏ 한 단 평균 소매가격은 3천18원이었다고 한다. 대파 한 단 가격을 875원으로 아는 윤 대통령을 향해 '세상물정을 모른다'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날 선 공격을 쏟았다. 대파논란이 불거진 닷새 뒤 경기도 포천을 방문한 이 대표는 포천 현장 기자회견에서 대파를 들어 보이며 "오는 길에 하나로 마트에서 진짜 대파 한 단이 얼마나 하는지 사 봤다"며 "대통령이 살 때는 875원이었으니 야당 대표가 가면 900원 정도일까 했는데 3천900원이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일부러 대파쇼핑을 했다니 대단한 성의다. 이어진 의정부 연설에서도 대파 한 단 875원을 지적하며 세상물정에 어두운 대통령을 비난했다. 하지만 전업주부도 헛갈리는 대파가격까지 정확히 알아야만 정치인의 자질을 갖춘 것이라 생각하는 국민은 아주 드물지 싶다.

신현영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도 대파공격을 거들었다. 신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대통령을 향해 "대파 한 단이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 같다는 말로 국민의 복장을 뒤집어놓고 있다"며 "세상 물정에 어둡고 국민 삶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새삼 확인하며 국민은 오만정이 다 떨어진다"고 했다. 마무리 발언으로 "대파 한 단에 9천 원이 넘는다"며 친절하게 대파시세를 알려주었다.

사실 아무리 특별 기획가라 해도 대파 한 단에 875원은 얼토당토않은 가격이다. 그런데 신현영의 대파 한 단에 9천 원 역시 세상물정에서 한참 먼 발언이다. 한단에 9천 원이 넘는 대파라면 금가루라도 뿌린 것인가? 신현영이 대파 한 단에 9천 원을 외친 날 동네마트 대파는 2천800원 정도로 3천 원을 넘지 않는 가격이었다. 매대에 놓인 대파 표시가격을 적정가격으로 알았던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대파가격을 몇 배 부풀려 민심을 자극한 신현영의 발언 역시 신뢰가 가지 않는다.

설 명절이 들어있는 1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는 대파가격이 년 중 가장 비싼 때다. 몇 년 동안의 대파시세를 돌아보면 올해의 대파시세가 예년에 비해 높은 가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21년 3월의 대파시세가 유달리 높았는데, 대파 한 단이 7천 원을 넘자 대파대신 금파가 된 대파를 집에서 키워 먹는 파테크가 유행하기도 했다. 파에 재테크를 합친 파테크에 이어 대파코인, 반려대파 등 냉소적 신조어가 연이어 등장했다.

초봄에 과일이나 대파 값이 폭등하는 이유는 지난여름의 긴 장마와 겨울한파, 폭설 등 자연환경의 영향이 크다. 전지전능한 초능력자가 아닌 이상 아무리 유능한 농부라도 끈질기게 내리는 비와 매서운 한파를 조정할 수는 없는 법이다. 코로나로 인해 수요가 적어 가격이 폭락했던 2020년을 제외하고 2021년, 2022년, 작년 이맘때의 대파는 모두 비쌌다.

정치인들이 대파 한 단 값 때문에 나라가 망할 것처럼 난리를 떠는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국민들에게 무엇이 중한지 모르는 자기들끼리의 호들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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