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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4.02 14:39:29
  • 최종수정2024.04.02 14:39:29

류경희

객원논설위원

더불어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벌어진 구두밑창 사진을 공개했다. '선거에 임하는 이재명 대표의 절박함이 오롯이 녹아 있다'는 설명문구 중 절박함이란 단어가 눈길을 잡는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숱하게 써 먹어 이젠 식상한 구두밑창 홍보가 다시 등장한 것을 보니 절박하긴 한가보다.

국민의 미래는 이를 두고 '조작된 이미지'라 논평했다. '이 대표의 떨어진 구두를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비서실의 설명이 안쓰럽다 못해 민망하다'며 정치는 진정성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인들의 낡고 벌어진 구두 밑창 사진 중 가장 이슈가 됐던 컷은 서울시장 후보 시절 박원순의 사진이었다. 박원순의 구두 뒤축은 지나치게 찢어져 금방이라도 밑창이 떨어져 나갈 상태였다.

사진작가 조세현이 '가끔 렌즈가 엉뚱한 방향을 가리킬 때도 있다'며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박원순 구두 사진은 빠르게 확산되며 온라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런데 박원순의 검소함을 칭송하던 여론이 시간이 지나며 연출이 아니냐는 의혹으로 변해갔다.

형편없이 훼손된 구두 뒤축은 오래 신어 닳은 것이라기보다 개가 물어뜯은 듯 함부로 뜯긴 모습이었다. 뒤창에 비해 지나치게 생생한 구두 외관도 어색했다. 이에 대해 박원순 캠프의 홍보전략 담당자는 박원순 후보의 낡은 구두가 좋은 선거전략 자원이 될 수 있어 사진을 찍은 것뿐이며 따로 연출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애들레이 스티븐슨 2세'는 그가 신은 낡은 구두 사진이 화제로 떠올라 주목받은 최초의 정치인이다. 1952년 9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와 겨루게 된 민주당의 애들레이 스티븐슨은 버거운 상대와 힘든 유세를 치러야 했다.

스티븐슨이 미시간주의 플린트 시에서 열린 노동절 기념 노동자 대회에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현장에서 후보사진을 건지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더 플린트 저널'의 '윌리엄 M. 갤러거' 기자는 다리를 꼬고 앉은 스티븐슨 후보의 신발 밑창에 뚫린 구멍을 발견했다. 신문에 보도된 구멍 난 구두 사진 덕분에 대통령 후보였던 스티븐슨은 청렴한 정치인으로 큰 지지를 받았고, 사진을 건진 갤러거 기자는 이듬해인 195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스티븐슨은 구멍 난 구두 이미지를 그의 근면과 청렴을 상징하는 선거 운동용 옷핀으로 만들며 열심히 유세를 펼쳤으나 제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의 벽을 넘지 못했다.

익살맞고 재미있는 일화를 모아놓은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신발의 밑창이 다 닳아 없어져서 거의 맨발로 다닐 만큼 몹시 가난했던 동곽 선생의 이야기가 전한다. 동곽 선생의 신발 일화가 유명해지다 보니 동곽의 신발이라는 의미인 동곽리(東郭履)가 몹시 가난한 형편을 일컫는 성어가 되었다.

동곽 선생은 가난을 오히려 희화하는 해학과 영민한 계책으로 전한(前漢)의 황제인 무제(武帝) 의 인정을 받아 벼슬자리에 오른 제(齊)나라 사람이다. 벼슬을 얻기 전 동곽 선생의 행색은 남루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비바람을 가리지 못하는 누더기와 밑창이 다 닳아 없어진 신을 걸치고 다녔는데 눈 속을 걸으면 신발의 밑창이 거의 없어 발바닥이 맨 땅에 닿았다.

사람들이 이 모습을 보고 딱하다 걱정했지만 동곽 선생은 태연히 웃었다. '나 말고 세상 어떤 사람이 눈 덮인 길을 걸으며 위는 신발인데 아래는 맨발이 보이게 할 수 있겠는가'

동곽 선생처럼 멀쩡한 신을 구할 형편이 되지 못해 밑창 떨어진 신발을 신는 사람은 요즘 대한민국엔 없다. 너덜거리는 신을 끌고 다닌다면 아마 구멍 나고 찢어진 패션인 '디스트레스트 룩(distressed look)'을 멋으로 연출한 것일 게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느라 모르는 사이에 벌어졌다는 정치인의 구두 사진을 다시 들여다본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자신의 승리가 아닌 절박한 민생을 위해 구두 밑창이 벌어질 만큼 뛰어다닐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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