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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함대 격파 전법을 왜구에게 배웠다" 자랑

17. 일본제국 해군
중세의 '바다의 무사단'이 그 기원… 큰배 호위방식 지금도 비슷
해군성에서 해적자료를 널리 수집해서 묶어놓은 '해지편찬자료'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의 해적박물관 이름은 '무라키미 수군박물관'

  • 웹출고시간2013.02.05 19:31:3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17. 일본제국 해군

아키야마 사네유키.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옛 왜구의 전법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시바료타로가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서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 의미를 부풀렸다. 일본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에게 승리한 큰 요인이 왜구의 전법이라는 것이다.

그가 읽은 왜구책이 필사본 「노시마류해적고법(野島流海賊古法)」 「해적류(海賊流)」 「미시마류(三島流)」이라고 한다. 노시마(野島)는 왜구 거점으로 잘 나오지 않는 섬이다. 그것은 무라카미 해적의 거점인 노시마(能島)의 다른 표기이다.

이런 책을 전해준 동료 해군장교 오가사와라 나가나리(小笠原長生, 1867~1958)란 인물이 묘하다. 그의 아버지는 규슈 가라쓰(唐津) 번주로서 막부의 최고 정무직인 로쥬(老中)를 지냈다. 가라쓰는, 임란 때 도요토미가 세운 전진기지인 나고야(名護屋)성 인근에 있으며, 유명한 마쓰우라 왜구 거점이었다. 왜구 문화에 젖어 살아온 장교가 왜구를 소개한 셈이다.

 노시마류해적고법(野島流海賊古法)이라는 책에 실린 일본 왜구들의 작전도이다. 매복과 협공을 통해 적의 배를 공격하는 전술을 설명하고 있다.

아키야마 사네유키가 배운 전법의 핵심은 다음 몇 가지이다. "전력으로써 싸운다." "흩어진 배를 하나로 모은다." "배를 공격해서 사람의 마음을 공격한다." "적의 기를 빼앗는다."

해적은 먼저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서 분산된 적을 격파하고, 여러 해적선을 하나의 목표에 집중시켜 공격하며, 심리전으로 마음을 동요시켜서 기를 빼앗는다. 뱀처럼 장사진으로 쳐서 들어가며 여러 배가 시차를 두고 공격한다거나 심리전을 펴 사기를 꺾는다는 방식들이다.

"발틱함대가 두 개의 대열을 이루고 동해로 들어왔을 때 대열 하나로 맞부딪쳐온 일본 함대가 갑자기 진로를 좌회전해서 측면을 노출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전면을 막고 지나가며 함정 좌측에 배치한 다수의 포로 집중 사격하였다. 그래서 기함을 먼저 격파하여 러시아해군의 기세를 제압하였다." 그것이 해적의 책에서 배워 응용했다는 전법이었다.

일본사 전체의 정점은 러일전쟁에 있다. 그 결과로 일본이 강대국 대열에 편입되었다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런데 막강한 러시아함대를 격파한 전법이 왜구의 전법이라고 하니 그런 왜구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었을까?

■ 왜구 자료를 수집한 제국 해군성

아키야마 사네유키의 왜구전법을 연구한 학술발표회 안내문.

메이지 유신 후 농상무성은 왜구 자료를 본격적으로 수집했다. 1883년 해군성이 이 사업을 계승해서 해운과 조선 그리고 통상 자료와 함께 「대일본해지편찬자료(大日本海志編纂資料)」로 묶었다. 해군문고에 있던 이 자료는 지금 도쿄대학 코마바(駒場)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왜구 수집품은 다양하다. 각 파벌은 수군제유파(水軍諸流派)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전해온 비법들은 얼핏 보아도 흥미롭다. 선단을 이루고 항해할 때 작은 배들이 큰 배를 전후에서 지키며 가는 방식은 요즘 해군과 다름없다. 5척 또는 10척이 한 조로 운행하는 방식도 있다. 50척 이상 동원하는 공격에서 선단 배열과 공격방향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다.

해적은 엄격한 규율로 통제했다. 각종 선박과 그 운용도 세세한 항목들로 규제했다. 군량, 소금, 된장, 땔감, 촛불 등을 관리하는 법과 창칼, 화승총 등 무기 사용법 그리고 독약사용법이 나온다. 바다 위에서 원반 위의 자석으로 방향을 정했던 법도 알려주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갖가지 실전 교육이다. 대장선의 진퇴와 소선으로 대선을 공격하는 법, 그리고 척후선으로 정보를 파악하고 크고 작은 깃발로 명령을 내리는 세세한 내용이 있다. 해안 지형과 공격 대상인 병선의 위치를 표시한 그림까지 덧붙여 이해를 돕고, 필요하면 손자병서의 인용구로 설명한다. 이런 책이 몇 백 책이나 된다.

■ 제국 해군의 시작은 왜구

일본제국의 해군은 왜구에서 나왔다. 진무(神武)천황이 남규슈의 미야기현에서 야마토국을 정복하는 배를 띄웠다는 신화까지 해군의 시작을 올린 적도 있었다. 그래서 휴가(日向)의 미미쓰항에 '해군의 발상지'란 비석까지 세웠다.

그러나 제국 해군의 기원은 중세의 수군에 둔다. 이른바 '바다의 무사단'이란 왜구가 그 수군이다. 이들은 규슈와 세토내해를 오가는 배들을 위협해서 통행세를 받거나 조선과 명의 연안을 침범했던 그 왜구들이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시마의 해적을 직속하고 부린 것을 본받아 도요토미가 영주에게 예속시킨 뒤 이들은 수군을 자처하고 영주 간 세력싸움에 참여하였다.

막부 말기에 카스 카이슈(勝海舟, 1823~1899)가 고베에 세운 해군조련소와 거기서 길러낸 사카모토 료마가 결성한 가이엔타이(海援隊) 등이 근대해군으로 변신했다. 이 신식 해군에 들어간 인물들이 바로 왜구의 전통을 가지고 들어갔다. 과감성 잔인성과 같은 것이다.

초기의 군항인 쓰시마의 다케시키(竹敷), 고토열도의 와카마쓰(若松), 미에의 토바(鳥羽) 등과 지금도 중요한 해군기지인 사세보(佐世保), 구레(吳), 가고시마(鹿兒島)가 모두 왜구의 근거지였다. 함정을 만드는 조선소도 해적선을 만들던 근거지인 나가사키 등지에 세워졌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지휘관을 추적하면 흥미 있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다. 가고시마 출신 즉 사쓰마 계열의 이토 스케유키(伊東祐亨),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 등이 왜구 문화 속에서 길러진 인물들이다. 시바료타로 소설의 주인공 아키야마 사네유키도 선조가 수군, 곧 왜구라고 한다.

■ 왜구를 전시하는 해적박물관

에히메현 이마바리의 '무라카미 수군박물관'.

일본의 해양 박물관은 42개나 된다. 주요 박물관의 해양사 자료는 대부분 해적 자료를 전시한다. 그중 내놓고 수군박물관을 세운 곳은 에히메현 이마바리의 '무라카미 수군박물관'이 유일하다. 물론 말이 수군이지 전시내용은 해적이다.

박물관을 알리는 돌판에 미시마(三島)의 글씨라고 써있다. 우경화를 부르짖으며 자위대 안에서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키오라는 극우작가가 아닌가. 왜구 또는 수군이 갖는 상징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시마의 무라카미 해적이 다른 해적과 벌인 수전 모습.

이 박물관은 전망이 좋다. 북쪽으로 왜구 소굴 노시마(能島)로 이어지는 바다가 시원하다. 무인도인 노시마의 왜구 성채는 성벽과 주거지를 발굴했다. 이 유물은 주요 전시자료이다. 전시물 중 가장 볼만한 것이 상상도이다. 해적들이 약탈하는 장면이나 영주편에 서서 내전에 참가한 모습이 있고, 각 파벌이 서로 다투며 수전을 벌이는 그림이 있다.

해적두목 무라카미 가케치카(村上景親) 조각상.

그의 첩은 임란 때 납치해 온 조선 양반의 딸이다.

무라카미 성을 가진 해적들도 갈등이 심했다. 서양해적 영화에서 삼촌과 조카딸이 격렬하게 싸우듯 그랬던 모양이다. 인노시마(因島)의 무라카미와 노시마의 무라카미가 사이가 좋지 않아 각각 히로시마와 에히메의 섬에 본거지를 따로 두고 경쟁했다. 인노시마의 천수각은 이 섬의 해적 유물을 보여주는 전시실로 기능하고 있다. 임란 때 왜구는 인간사냥에 몰두했다. 수군박물관엔 납치해온 양반의 딸을 첩으로 삼은 무라카미 가케치카(村上景親)의 조각이 있다.

워낙 왜구 무리가 많다보니 여러 곳에 흔적이 갖가지다. 규슈의 마쓰우라 일대는 왜구의 원조로서 가장 먼저 노략질을 시작한 마쓰우라당(松浦黨)의 본거지였다. 악명 높은 이 집단의 흔적은 히라도섬의 '마쓰우라 사료박물관(松浦史料博物館)'에 가득하다.

옛 지배자인 마쓰우라 번주의 집이었던 이 박물관엔 네덜란드와의 무역, 기독교 포교사 그리고 히라도 영주가 소장했던 사료와 미술품 등으로 전시관을 꾸몄다. 그러나 그 핵심은 왜구이다.

왜구 관련 설명은 이렇다. "나가사키와 사가현 북부의 해안선은 역사적으로 바다와 관련된 생업을 가진 거주자가 있었다. 이들이 '바다의 무사단'인 마쓰우라당으로서 겐코(元寇) 후 보복적인 의미나 국내 사정으로 한반도를 덮치는 왜구가 되어 맹위를 발휘한다. 조선이 성립하면, 왜구 회유책이 나와 진정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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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충북 이노비즈 기업들이 연결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기술 우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기술혁신형 중소기업은 지역 내 탄탄한 경제 기반으로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30일 취임한 안준식(55) 신임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장은 회원사와 '함께 성장하는 기술혁신 플랫폼'으로서 이노비즈협회 충북지회 역할을 강화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안 신임 회장은 "취임 후 가장 먼저 해야할 부분은 이노비즈기업 협회와 회원사 위상 강화"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대외협력위원회(위원장 노근호 전 충북테크노파크 원장) △경영혁신위원회(위원장 이미연 ㈜유진테크놀로지 대표) △회원사 협력위원회(위원장 한연수 ㈜마루온 대표) △봉사위원회(위원장 함경태 ㈜미래이앤지 대표) △창립 20주년 추진위원회(위원장 신의수 ㈜제이비컴 대표)로 5개 위원회를 구성했다. 안준식 회장은 도내 회원사들이 가진 특징으로 빠른 적응력과 협력네트워크를 꼽았다. 그는 "충북 이노비즈 기업은 제조 기반 기술력과 신사업으로의 적응력이 뛰어나다. 첨단산업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다수 분포해 있고, 산업단지 중심 클러스터화도 잘 이뤄져 있어 협력 네트워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