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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와 구일본군 무기를 전시한 관광지 도고온천

한중일 역사분쟁! 그 뿌리를 찾아가다
욱일승천기가 갖는 의미에 눈을 감은 무신경이 분쟁의 원인
러일전쟁에서 사용한 28cm유탄포 축소모형을 자랑스럽게 전시

  • 웹출고시간2012.10.23 17:43:1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4. 욱일기와 구일본군 무기를 전시한 관광지 도고온천

한중일의 근대사 서술은 같은 내용을 기록하면서 서로 다르다. 특히 일본사 서술은 시각이 다르기 때문에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메이지정권이 치룬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최대목적은 한국의 식민지 확보. 일본은 이 전쟁을 미화하고 사실을 왜곡해서 군국주의 한길로 나아갔다. 그 결과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했고, 아시아 여러 나라는 식민지 전락과 전쟁참화로 고통을 받았다. 구일본군이 휘날리던 욱일승천기의 부활로 앞날이 어둡다.

■ '온천과 성과 문학'의 도시 마쓰야마

마쓰야마성 전경.

에히메현 마쓰야마시는 정감이 가는 도시이다. 시코쿠(四國)를 대표하는 인구 52만 명의 도시이지만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도심이든 주거지든 안온한 느낌이 든다.

마쓰야마시는 자랑거리로 도고온천과 마쓰야마성과 함께 문학을 내세운다. 시내 곳곳에 표어로 붙여놓고 강조를 한다. 정감이 가는 이런 주제를 도시의 정체성으로 밝히는 동시에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역사도시인 마쓰야마의 상징은 마쓰야마성이다. 도시 중심에 솟아있는 가쓰산 위의 천수각은 도시 전체에서 잘 보여 이정표가 된다. 연립식 산성은 문화재로서도 중요하다고 한다.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은 마사오카 시키이다. 도고온천에 세운 마사오카 시키의 기념박물관은 문학박물관인 동시에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잠시 교사생활을 하며 지냈던 연고지들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마쓰야마 문학의 핵심은 시바료타로의 소설 「언덕 위의 구름」이다. 마쓰야마시는 시내 전체를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홍보하면서 이 소설과 관련한 여러 방문코스를 만들었다. 내년엔 관광객을 끌어들여 84만 명을 도고온천에 숙박시키는 등 약 8,600억원의 관광수입을 올릴 계획이다.

이 도시 출신인 주인공 세 사람과 관련된 장소를 모두 중요한 볼거리로 알리고 있다. 시키가 살던 집과 생가는 물론 다녔던 중학교에 돌표석을 설치했고, 가묘와 요양했던 집도 방문지로 안내한다.

아키야마 형제가 태어나서 살던 집에 전시된 아키야마 요시후루의 휘호 비석 사진. 여러 신사와 러일전쟁 전사자의 충혼비를 쓴 휘호들이다.

아키야마형제가 태어나서 살던 시내 중심부의 옛집은 복원해서 하급무사의 전형적인 집이라는 설명과 함께 전시관을 만들었다. 고등학생 이하는 무료로 입장시킨다. 마당에는 형제의 동상이 있다. 형 육군대장 요시후루는 말을 탄 기병의 형상이고, 동생 해군중장 사네유키는 반신상이다.

요시후루는 휘호를 많이 남겼다. 러일전쟁 전사자의 충혼비와 지역 신사의 이름 등 요청받는대로 써준 휘호는 에히메현 곳곳에 돌비로 남아있다. 생가 옆에 유도와 합기도를 가르치는 무도장을 세웠는데 그 옆면에 휘호 사진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 관광지 온천에 전시한 욱일승천기와 유탄포

도고온천에서 사기타니묘지로 올라가는 길목에 아키야마 육군대장과 시라카와 육군대장의 무덤을 알려주는 팻말이 있다. 이 돌팻말은 상단에 손가락을 돋을새김해서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호텔 츠바키관(椿館)에서 내놓은 안내판이 또 나온다.

도고온천에 전시된 28센티미터 유탄포 축소 모형 - 뤼순 공격에 사용한 구일본군 무기이다.

그 호텔 앞에 특이한 것을 전시하였다. 러일전쟁 때 사용한 무기인 28센티미터 유탄포였다. 비록 축소 복제품이긴 하지만 호텔 앞에 살상무기를 전시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1904년 일본군은 러시아의 뤼순(旅順) 요새 공격에서 고전하였다. 막대한 사상자가 나면서도 고지를 점거하지 못하자 급히 동원된 포가 일본 해안방어를 위해 배치된 28센티미터 유탄포. 일본에서 가져간 18문의 포는 뤼순요새를 파괴시키고 요지인 203고지 점령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뤼순만 안에 정박했던 러시아함정은 고지 관측으로 쉽게 포격당해 치명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

최대 사정거리 7,650미터의 이 포는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의 203고지편에도 등장해서 유명한 무기가 되었다. 바로 그 복제품을 온천 관광지의 호텔 앞에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 유탄포를 설명하는 안내판에는 욱일승천기가 또렷이 그려져 있었다.

구일본군 무기의 안내문에 뚜렷한 욱일기. 둥근 원이 치우쳐있는 것은 구일본 해군 전함기이다. 그 옆에 사기타니 시립묘지에 묻힌 지역 유명인사가 나열되어 있다.

이른바 욱일기(旭日旗)는 일제 육군 군기로 일장기를 변형해서 제정한 깃발이다. 해를 상징하는 붉고 둥근 원 둘레에 16가닥 햇살을 그렸다. 일본군이 처음 외국에 나간 1894년의 조선파병시 욱일기를 앞세우고 왔고, 최초의 국권유린 사태인 경복궁 침범과 청일전쟁도 이 깃발을 앞세우고 벌였다. 남경대학살도 이 깃발 아래서 저질렀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주민의 학살도 그러했다. 구일본해군의 군함기는 둥근 원을 한쪽에 삐딱하게 위치시킨 것인데 진주만 기습은 이 해군 군함기 아래서 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욱일기를 앞세우고 침략을 감행한 일본을 나치 깃발을 앞세웠던 독일과 동일하게 보고 있다. 나치의 죄악상을 뼈를 깎는 반성으로 청산한 독일에서는 공공연히 갈고리 십자가 형상인 나치 깃발 하켄크로이츠기를 내세우지 못하지만 일본에선 욱일기를 긍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자위대는 지금도 8가닥 햇살 깃발을 사용한다.

일본 기병대를 키운 아키야마 요시후루 육군대장의 기마 동상.

나치독재와 침략은 12년이란 기간에 불과했다. 히틀러가 집권한 해는 1933년, 침략을 시작한 단치히 합병은 1939년의 일이다. 프랑스를 공격해 본격적인 전쟁이 발발한 것은 1940년이었다. 나치독일이 항복한 1945년까지 따지면 단지 12년이나 6년, 또는 5년 동안 유럽을 위협하거나 전쟁을 벌였다.

일본의 침략과 전쟁은 매우 길었다. 1894년 청일전쟁부터 헤아리면 패전까지 51년이나 된다. 노일전쟁부터 세면 40년 간 아시아를 위협했고, 루거우차오 사건으로 시작한 중일전쟁부터 세면 8년이나 침략전쟁을 벌였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저지른 전쟁범죄를 반성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독일 여러 지역에 나치스 깃발 아래 무기를 전시하고 침략전쟁의 지휘관을 숭배하는 기념관과 묘지가 널렸으면 어떠했을까· 일본은 그렇게 하고 있다. 왜 일본은 전범을 상징하는 욱일기를 변형해서 올림픽 선수단의 경기복을 만들었을까· 현대사의 수수께끼이다.

■ 왜구와 유신회와 시바료타로

더 오래전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되지만 왜구와 관련된 문제도 있다. 일본에서 큰북을 치는 행사를 '박력 있는 수군의 큰북'이라고 불렀다. 이때 쓰는 용어인 수군은 말이 수군이지 해적을 의미한다. 큰북을 두드리며 조선과 중국의 해안지대에서 노략질한 것이 지금도 자랑스러운 것 같다. 아키야마 형제의 선조도 수군이었다고 하는데 해적의 후손일 수도 있겠다. 그런 해적을 드러내는 '무라카미 수군박물관'도 에히메현에 설립되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새 정치세력 '일본유신회'가 득세하고 있다. 하시모토 도루의 정치 개혁 시도는 호응을 받는다고 하나 국제 관계에 관한 언급을 보면 극우를 대변해서 걱정스럽다. 유신을 내세운 이런 정파가 여러 지역에서 나왔지만 대개 선거에서 떨어져 세력을 키우지 못했는데 예외가 마쓰야마이다. 지역정당 '마쓰야마 유신회'는 에히메현 지사와 마쓰야마시 시장을 석권했다.

시바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역의 정체성처럼 부상되었다. 그리고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젊은 학생들의 역사 이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이런 현상에서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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