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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8.17 13:59:45
  • 최종수정2015.08.17 13:59:29

임미옥

작가

며칠 간 자다 깨고를 반복하며 지냈다. 후덥지근한 상태가 연일 이어지다 보니 숙면을 취하지 못해 종일 나른하다. 하루는 에어컨을 켠 채 잠이 들었다. 자다보니 체온이 내려가 한기가 느껴져 잠이 깨졌다. 창문을 보니 동이 트려면 먼 것 같다. 발끝에서 이불을 끌어다 덮고 잠을 청하노라니 어머니 생각이 났다. 어릴 적에 어머니께선 이럴 때 마다 이불을 덮어주셨지. 포근한 그 사랑으로 난 다시 잠들곤 했었지….

아이들을 키울 때 나도 어머니처럼 이불을 덮어 주곤 했다. 온 방을 배밀이 하며 뺑뺑이질 한 뒤, 네발로 기며 운동한 뒤, 흙장난 하고 나서 씻겨 재운 뒤, 이불을 덮어주고 내려다보는 그 행복감이라니…. 떼쓰다 울며 잠들거나 생활습관을 교정시키느라 혼낸 뒤 잠이 들면 가만히 쓰다듬어 주곤 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딱하지…."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이불을 덮어주는 일은 행복한 일이다.

한 아버지가 낮술을 드시고 만취한 상태로 하체를 드러내놓고 깊이 잠이 드셨다. 이런 실수를…. 그에겐 세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그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는 형과 아우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 형과 아우는 현장으로 가선 민망한 그 장면을 차마볼 수 없어 홑이불을 양쪽에서 들고 뒷걸음질로 들어가 아버지 하체를 덮어드렸다.

성경 인물인 아버지 노아는 후에 이야기를 듣고, 첫째와 셋째에게는 축복을 하고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둘째를 저주했다. 아니, 둘째가 없는 일을 지어내서 말한 것도 아니고 눈으로 본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저주씩이나 할 게 무어냐고 노아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선 같은 상황을 만난 아들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실적인 일이라 해서 남의 실수나 허물을 발설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사실일지라도, 남의 약점을 타인들에게 이야기하여 고발이 되면 현행법상으로도 명예훼손죄로 인정된다. 하물며 아버지 실수를 떠들어 대다니…. 이것이 둘째아들의 죄다. 나머지 두 아들의 태도를 살펴보면 거의 예식수준에 가깝다. 아버지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데, 예를 갖춰 뒷걸음으로 조심히 덮어드렸다.

보고나면 아무래도 아버지의 실수가 생각나 존경하는 마음에 금이 가게 돼 있다. 두 아들이 아버지 실수를 보지 않은 것은, 덮고자하는 행위의 이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마음으로 덮고 홑이불로 덮고 이중(二重)으로 덮어드린 셈이 된다. 함석헌 선생의 일화가 생각난다. 선생이 오산학교에 재직할 때였다. 동료교사 중 문제교사로 학생들에게 지목된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학생들이 몽둥이를 들고 교무실로 쳐들어온다는 정보를 듣고 다른 교사들은 모두 도망갔는데 선생만 남아 있다가 봉변을 당했다.

분노한 학생들은 선생이 그 문제 교사인줄로 착각하고 마구 몽둥이질을 했다. 그런데 선생은 맞을 때 눈을 감고 있어서 후에 학생들 얼굴을 한명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묻자 '눈뜨고 때리는 학생 얼굴을 보면 후에 어찌 제자로 사랑하여 가르치겠느냐' 라고 대답했다. 취모구자(吹毛求疵)라는 말이 있다. 털을 불어서 흠을 찾는다는 의미이다. 남의 흠이나 실수를 부러 찾아내는 무섭고 야박한 사람도 허다하거늘, 선생의 태도는 존경스럽다. 남의 실수를 보지 않는 건 덮고자하는 배려이고 사랑이다.

농작물 하나 키워내는데도 잘 덮어 줘야 한다. 질서정연하고 촘촘하게 마늘을 다 놓고 나면 볏짚을 이불처럼 덮어줘야 건강하게 자란다. 들춰내는 것은 죽이는 일이나, 덮어주는 일은 상대방을 지키고 보호하는 일이고, 포용하는 일이고 용납하여 살리는 일이다. 허물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암탉이 날개로 그 새끼를 감싸듯 서로에게 '생명싸개' 혹은 '덮개'가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을 생각만 해도 살맛나지 않는가· 이불을 포근히 덮어주는 경험을 해본 이는 안다. 덮어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행복은 요술이나 마술이 아닌 예술에 가까운 것, 예술가가 각고의 노력으로 작품을 만들듯 서로 함께 눈물과 땀을 흘리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행복한 세세상은 남의 실수를 덮어주고 긍휼히 여겨 용납해 주지 않으면 요원해 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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