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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8.31 13:21:40
  • 최종수정2015.08.31 13:21:28

임미옥

작가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누군가로 인하여 기분 좋은 경험을 한 적이 있으신가· 작은 배려와 한마디 발하는 사람의 말이 이 땅을 하늘나라처럼 즐거운 곳으로 만든다고 말한 카네기 말처럼, 우리 사는 세상이 그런 사람들로 넘쳐난다면 참 행복할 게다.

하늘나라처럼 즐거운 곳…. 하루가 멀다 하고 험한 소리가 들려오는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선물 같은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남을 배려하는 선한 행동은 방대한 지식에 맞먹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리라.

기승을 부리던 불볕더위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한 운조루(雲鳥樓)를 찾아갔다. 전아하고 고아한 한옥 운조루 대문 앞에, 네모반듯한 연못 한가득 수련이 동동 떠있어 운치를 더한다. 운조루는 영조52년에 삼수부사, 낙안현감을 지낸 류이주란 사람이 지은 고택으로 품자(品字)형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구름은 마음대로 산을 넘나들고 새들은 날기에 지쳐 둥지로 돌아가는데 나는 언제나 고향으로 돌아가리.' 라고 노래한 도연명의 시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구름속의 새처럼 숨어있는 집이란 뜻을 가진 운조루 사랑채 왼쪽 마루 밑에 투박한 우마차 나무바퀴 하나가 시간이 정지한 채 놓여 져서 지나는 이들을 옛 시대로 데려간다.

안채로 가려면 문간채에 딸린 부엌을 통과해야만 한다. 저 안에 무명 행주치마를 입고 수건을 두른 내 어머니를 닮은 아낙네가 있을 것만 같다. 부엌에 들어서니 빛바랜 꽃가마가 있고, 그 옆에 원형과 사각형의 나무 뒤주 두 개가 나란히 있다.

그중 원형 뒤주 아랫부분에 타인 능해(他人能解)라고 써놓은 글귀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둥근 뒤주 하단에 가로10㎝, 세로20㎝ 정도의 사각 구멍이 나있는데, 이 구멍을 여닫는 나무 마개에 써놓은 '타인 능해'란, 아무나 이 뒤주를 열 수 있다는 뜻이다. 굶주린 사람 누구나 이 뒤주를 열고 쌀을 퍼갈 수 있게 한 주인의 배려이다.

쌀 두 가마 반이 들어가는 이 원형 뒤주가 비면 주인이 다시 쌀을 채우곤 했다는데 보통 열흘에 한 번꼴로 채웠다 하니, 일 년에 백 가마 정도의 양이다. 쌀의 양도 양이거니와 더욱 감동인 것은 배고파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없도록 하되, 뒤주를 주인 얼굴이 마주치지 않는 장소에 놓아두었다는 거다. 쌀을 퍼가는 사람의 자존심까지 배려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나눔을 실천한 집 주인의 인품에 고개가 숙여졌다.

운조루 주인처럼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타인들을 배려하는 손길이 주변에 있어 잔잔한 감동을 준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사찰이 없이 청소를 신자들이 구역을 나누어 하고 있는데, 그중 화장실 청소와 쓰레기 정리를 맡아 하는 이가 있다.

직장에선 관리자이고 교회에선 신자들 리더이고 한 가정의 가장인 그가 열네 칸이나 되는 화장실을 청소하고 적지 않은 양의 쓰레기를 일일이 분리한다. 아기들의 기저귀와 생리대 등 오물 묻은 휴지통을 비우고 음식물 찌꺼기를 큰길까지 내놓는다.

배려는 마음을 다하여 행할 때 더욱 가치가 있다. 눈에 보이는 배려는 한계가 있으나 마음을 다하면 일상이 된다. 그는 사람이 없는 이른 새벽에 청소를 하므로 남들이 기피하는 그 일을 일상처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몇 되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년이 넘도록 찬송을 흥얼거리며 즐겁게 하는 것을 보면 일시적인 감정이나 어떤 목적을 두고 하는, 보이기 위해 하는 제스쳐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타인들의 쾌적한 환경을 배려하는 그가 매력적이다. 배려하는 일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미모의 아름다움이 눈을 즐겁게 한다면 남을 배려하는 인품은 마음을 매료시킨다. 타인을 배려하는 일이 일상인 그의 주변엔 사람이 모여들어 늘 잔칫집 분위기다. 그것을 행하는 자신도 행복하다 말하는 것을 보니 배려하는 일은 모두의 행복을 만들어 가는 기저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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