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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작가

음력 8월이 다가오면 벌초 걱정을 한다. 16년 전, 아버님 생전에는 쓰지 않았던 신경이 맏이인 우리 내외에게 안겨졌다. 추석명절이 추썩추썩 다가오는 한 달 전부터 남편과 나는 미묘한 감정대립을 한다. 시동생들에게 벌초 날짜를 알리려는 나의 속내를 모를 리 없는 남편은 겉으론 짐짓 무심한척 한다. 그러나 남편은 "바쁜 애들을 굳이 부르려하느냐"며 "같이 하면 빠르잖아요"라는 내 의견에 아버님을 앞세워 동조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다.

남편이 동생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아버님의 모습에서 기인된 것일지 모른다. 해마다 아버님은 자식들에게 벌초할 테니 내려오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돌아보면 직장생활로 바쁜 자식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었던 것 같다. 아버님께서 깔끔하게 정리하신 산소 앞에서 우린 죄송한 마음에 벌초할 때 꼭 전화하시라는 말씀을 올리지만 그때 마다 앞으로 너희들이 맡게 되면 저절로 할 테니 걱정 말라 손사래를 치셨다. 몇 년 후 아버님께서 영면하셨다. 말씀대로 자식이 아버님 입장이 된 것이다. 남편은 혼자 벌초를 해나갔다. 그리고 그 옛날 아버님이 하셨던 것처럼 동생들에게는 직장 때문에 힘들테니 근무 잘하라며 걱정 말라했다.

그런데 부모의 시각과 형수의 시각이 달라서였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혼자 힘들어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내 생각은 방향을 달리하게 되었다. 안타깝기도 하고 함께 하는 게 좋을 것 같은 생각으로 전화를 할까 어쩔까 망설이던 어느 해 추석 무렵이었다. 시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동생은 쭈삣거리는 목소리로 그간 죄송했다며 올해부터 형과 같이 하겠노라 말한다. 순간 생각지 않았던 형과 같이 하겠다는 시동생의 말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텁석부리 같던 산소가 깎은 밤처럼 깔끔하게 단장이 됐다. 올해는 서로의 시간이 맞지 않아 일찌감치 벌초를 했다. 한낮의 더위를 피해서 서둘러 모두 모였다. 농사로 바쁘신 작은 아버님도 거들겠다 오시니 산소 앞자리가 가득한 것 같다. 산소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아버님 마지막 생전에 그토록 밟고 싶어 했던 푸른 대지건만 사람은 가고 바람소리만 휑하다. 좀 전에 보았던 웃자란 풀들은 당신이 생전엔 비치시지 않던 외로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가슴이 뻐근하다. 아버님과 지났던 그 시간들이 생각나면서 눈 밑이 더워온다.

나이를 먹을수록 일이 두렵고 걱정이 많아진 게 사실이다. 그 중에 하나가 벌초문제다. 시대가 변하고 장례문화가 바뀌고 있다. 당대는 별문제가 없겠지만 후손으로 내려갈수록 벌초가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핵가족화로 온가족이 모이는 문제나 화장 및 납골문화가 확산되면서 벌초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조상이 있어 내가 존재하게 되었고 내 안에는 조상의 정기가 흐르고 있음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우리에겐 기억하고 간직해야 할 미풍양속과 조상들의 정신이 있다.

산소를 쓰든 화장을 하든 중요한 것은 조상 앞에서 자신을 벌초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다. 내가 어디서 왔으며 나의 뿌리가 어디 있는지 말만으로 알아지는 게 아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몸이요, 몸은 보이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벌초는 잡풀처럼 자란 자신의 웃자란 마음을 몸을 통해 베어버리는 일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벌초의 손길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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