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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별 희한한 꿈을 꿨다. 어젯밤 꿈속에서 나는 대여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였다. '나'라고 하는 아이는 하늘색 원피스를 입었던 것 같고 느티나무 고목 아래 서서 늘어진 가지에 매달린 새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매달린 둥지가 꿈틀. 정지한 바람, 정지한 뒤척임, 정지한 시선, 가만히 둥지를 바라보던 나는 새집으로 돌아오는 어미 새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고 말았다.

벽시계가 새벽 세시를 향하고 있었다. 눈은 떴지만 흐리멍덩하다. 새벽 세시의 정적, 정지한 풍경 속에서 아주 느리게 해체되는 시간 들. 초침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시침이 숫자 3에, 분침이 숫자 12에 가까이 간다. 세 시 정각이 완성되려는 찰나 벽시계의 숫자들이 평야의 하늘을 날아가는 새 떼처럼 순식간에 흩어져 날아간다. 갑자기 텅 빈 시계 판이 된다. 새벽 세시의 환(幻)이었을까. 숫자들과 숫자를 가리키던 침들이 사라진 여백의 판 위로 꿈속에서 보았던 새 둥지를 매단 느티나무가 걸어 들어 온다. 왠지 낯설지가 않다. 유년시절, 느티나무 아래서 숨바꼭질하던 아이들이 딱딱한 숫자가 있던 자리들을 따스한 체온으로 채우며 웃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내 나무였다.

자신의 나무를 가져 본 사람은 안다. 지상에 목숨을 부린 생명 있는 것들이 낱낱이 하나의 우주 시계라는 것을. 나무는 내게 계절과 바람, 소리와 빛들의 파장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알려 주었다. 인간에 의해 규정되기 이전에 약동하는 시간을 품고 하나의 목숨이 얼마나 위대해지는지를,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신만의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무들은 몸으로 직접 보여줬고 지금도 그러하다. 뾰족뾰족 새잎이 돋는 봄을 거쳐 무성한 여름을 지나 파도 소리를 내며 흔들리던 계절에 이르기까지 나의 나무들과 나누었던 말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무 밑의 시간들은 여전히 가장 눈부신 빛의 시간으로 내 마음 창고 어딘가에 저장된 지복(至福)한 양식이다.

중학교 때였던 것 같다. 외가 동네 뒷동산을 오르다 베어진 참나무 그루터기의 나이테를 유심히 본 적이 있다. 나무의 나이는 서른다섯 살. 참나무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 비록 몸이 잘렸지만 나무는 온몸으로 자신의 시간을 증거하고 있었다. 나이테의 동심원들이 이루는 물결 같은 시간의 일렁임. 물결은 살아있는 듯, 설명할 수 없는 울컥함을 느끼게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모든 시간은 모든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서 초. 분. 시간을 토막내어 오지 않는다는 걸 헤아리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시계라는 표상을 떠올릴 때면 겹겹의 나이테를 지문처럼 지니고 있던 둥근 그루터기가 먼저 떠오른다.

둥근 그루터기의 나이테에서 나의 나이테에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본다. 시간에 얽매여 살아왔던 시간의 물결을 거슬러 운동장에서 해와 그림자놀이 하던 시간이 떠오른다. 참 순박하고 즐거웠던 시간이다. 자연이라는 학습장에서 자연의 빛을 바람을 숨소리를 거기에 시간을 짐작할 수 있었던 시간에 머문다. 살아있는 시간. 스스로 만끽한 시간들이다. 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기에 그리움이라고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리움만 붙잡고 있다면 그건 한 곳만을 왕복하는 시계추의 생에 불과한 것. 중요한 것은 그 시간들이 어느 시간보다 진정으로 내게 살아있는 시간이었다는 기억이다.

12월을 그해의 마지막 달이라고 부른다. 시작 없는 끝이 있던가. 나이가 들면서 앞을 보기보다 뒤를 돌아보게 된다. 시작과 끝의 여울속에 일렁이던 시간의 흐름이 있기에 그렇다. 시간이 소중한 것은 삶에서 깨어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향유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생은 잠시다. 올 한 해 어떤 시간들을 보냈던가. 스스로 만끽하는 시간, 살아있는 시간을 얼마나 보냈던가. 내 몸속에 핀 시계를 들여다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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