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홍성란

수필가

천지가 초록으로 부풀어 오르건만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나보다. 그녀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 헐거워진 생이 앓는 소리다. 소리는 늙고 지친 여자의 울음처럼 들린다.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열어 보건만 안타까운 마음 뿐. 옷을 여며 주고도 차마 돌아설 수 없어 꺼져 가는 한 생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생의 끝이 그렇듯 그녀 또한 마지막을 예고하듯 간헐적으로 가래 끓는 소리를 토해낸다.

그녀의 몸이 처음으로 엇박자를 낸 것은 재작년 추석 전날이었다. 추석 제물과 음식들을 들이밀고 돌아서려는데 한 시간 전 까지도 활기찼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곧 입을 열겠지" 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을 기다려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 슬금슬금 불안해왔다. 동서들도 "형님, 이상해요, 빨리 손을 봐야겠어요."라며 재촉이다. 당장 내일이 명절인데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지고 당황스러웠던지.

그런데 미련한 게 사람이라고 추석사건이 있었음에도 난 그녀를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내게 그녀는 늘 그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있는 그런 존재로만 여겼던 것 같다. 올해 들어 3차례의 수술을 받고서야. 이미 그녀의 몸이 심각한 상태란 걸 전문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녀의 몸에 물이 차 있으며 심장과 폐에 심각한 손상이 왔다고 한다. 이런 수준이면 영면 길 수준이라 했다. 오래 살았고 노후가 직접 원인이란다. 그럼에도 난 가래만이라도 완화시켜달라고 했다. 며칠이라도 그녀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녀와 함께한 수많은 시간이며 그녀가 우리가족에게 건넸던 싱싱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지난날을 돌아본다. 처음 그녀가 집에 오던 날 부엌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았었다. 엷은 핑크빛 옷을 입고 우아한 자태로 서있던 그녀. 그녀는 인공지능을 지닌 문명의 기사였다. 디지털로 식구들 입맛대로 김치를 척척 숙성시키고 버튼만 누르면 얼음은 문밖에서 짜르르, 야채도 어찌 그리 싱싱한지 절전형에 문을 열어도 싱싱했었지.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추억을 건넸던가. 귀한 손님 오시던 날 신선 칸도 없이 횟감을 보듬고 애태웠던 일, 엉킨 얼음, 송곳으로 캐다 찔린 상처 눈물 찔끔거리며 살았던 일들, 안은 시리고 밖은 뜨거웠었지. 그랬던 그녀의 몸이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슬픔의 온도를 조율조차 할 수 없다. 뜨겁게 열 받아 속앓이를 하면서도 제 몸 칸칸이 들어찬 우리 식구의 투정을 적정한 온도로 받아내던 그녀였는데. 어쩌다 시간의 통로 어디쯤에서 생을 놓쳐버렸을까.

결국 간헐적으로 들리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슬아슬 몸 굴리는 소리조차 멀어져 가는 것 같더니 제 안을 밝혀 주던 전등조차 꺼져버린 이 비참한 슬픔. 아니 더 슬픈 건 그런 그녀의 울음소리가 베란다를 넘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아프다. 아무도 그 울음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에 의해 태어나 인간의 편리를 위해 살다 떠나는 태생적 운명을 지닌 그녀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늘 푸른 고등어의 등처럼 신선함을 건네던 그녀의 생을 생각한다면 삶의 메마른 기계화가 야속하다싶기도 한 것이다.

낡은 냉장고에서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부활과 보존의 타임머신이었던 그녀. 어찌 보면 어머니 또한 자식들에게는 부활과 보존의 타임머신이 아니었을까. 몸 칸칸이 들어찬 식구들의 투정을 적절이 받아내던 어머니. 삶이 힘들다 넘어지면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켰던 어머니. 때로 자식은 부모에게 이기적인 존재인지 모른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속울음 소리는 지나치면서 아쉬울 때면 부모님을 찾는 자식이라는 이름의 존재. 우린 그렇게 쉽게 잊고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밤, 낡은 냉장고가 여러 생각을 내게 건네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