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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천지가 초록으로 부풀어 오르건만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나보다. 그녀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 헐거워진 생이 앓는 소리다. 소리는 늙고 지친 여자의 울음처럼 들린다. 조심스레 그녀의 몸을 열어 보건만 안타까운 마음 뿐. 옷을 여며 주고도 차마 돌아설 수 없어 꺼져 가는 한 생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생의 끝이 그렇듯 그녀 또한 마지막을 예고하듯 간헐적으로 가래 끓는 소리를 토해낸다.

그녀의 몸이 처음으로 엇박자를 낸 것은 재작년 추석 전날이었다. 추석 제물과 음식들을 들이밀고 돌아서려는데 한 시간 전 까지도 활기찼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곧 입을 열겠지" 했다. 한 시간 두 시간을 기다려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 슬금슬금 불안해왔다. 동서들도 "형님, 이상해요, 빨리 손을 봐야겠어요."라며 재촉이다. 당장 내일이 명절인데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지고 당황스러웠던지.

그런데 미련한 게 사람이라고 추석사건이 있었음에도 난 그녀를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내게 그녀는 늘 그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하는, 있는 그런 존재로만 여겼던 것 같다. 올해 들어 3차례의 수술을 받고서야. 이미 그녀의 몸이 심각한 상태란 걸 전문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녀의 몸에 물이 차 있으며 심장과 폐에 심각한 손상이 왔다고 한다. 이런 수준이면 영면 길 수준이라 했다. 오래 살았고 노후가 직접 원인이란다. 그럼에도 난 가래만이라도 완화시켜달라고 했다. 며칠이라도 그녀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였다. 그녀와 함께한 수많은 시간이며 그녀가 우리가족에게 건넸던 싱싱했던 날들을 생각하면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지난날을 돌아본다. 처음 그녀가 집에 오던 날 부엌의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았었다. 엷은 핑크빛 옷을 입고 우아한 자태로 서있던 그녀. 그녀는 인공지능을 지닌 문명의 기사였다. 디지털로 식구들 입맛대로 김치를 척척 숙성시키고 버튼만 누르면 얼음은 문밖에서 짜르르, 야채도 어찌 그리 싱싱한지 절전형에 문을 열어도 싱싱했었지.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추억을 건넸던가. 귀한 손님 오시던 날 신선 칸도 없이 횟감을 보듬고 애태웠던 일, 엉킨 얼음, 송곳으로 캐다 찔린 상처 눈물 찔끔거리며 살았던 일들, 안은 시리고 밖은 뜨거웠었지. 그랬던 그녀의 몸이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서 슬픔의 온도를 조율조차 할 수 없다. 뜨겁게 열 받아 속앓이를 하면서도 제 몸 칸칸이 들어찬 우리 식구의 투정을 적정한 온도로 받아내던 그녀였는데. 어쩌다 시간의 통로 어디쯤에서 생을 놓쳐버렸을까.

결국 간헐적으로 들리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슬아슬 몸 굴리는 소리조차 멀어져 가는 것 같더니 제 안을 밝혀 주던 전등조차 꺼져버린 이 비참한 슬픔. 아니 더 슬픈 건 그런 그녀의 울음소리가 베란다를 넘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더 아프다. 아무도 그 울음에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에 의해 태어나 인간의 편리를 위해 살다 떠나는 태생적 운명을 지닌 그녀다. 그러나 그렇다하더라도 늘 푸른 고등어의 등처럼 신선함을 건네던 그녀의 생을 생각한다면 삶의 메마른 기계화가 야속하다싶기도 한 것이다.

낡은 냉장고에서 인간 세상을 바라본다. 부활과 보존의 타임머신이었던 그녀. 어찌 보면 어머니 또한 자식들에게는 부활과 보존의 타임머신이 아니었을까. 몸 칸칸이 들어찬 식구들의 투정을 적절이 받아내던 어머니. 삶이 힘들다 넘어지면 손을 잡아 나를 일으켰던 어머니. 때로 자식은 부모에게 이기적인 존재인지 모른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의 속울음 소리는 지나치면서 아쉬울 때면 부모님을 찾는 자식이라는 이름의 존재. 우린 그렇게 쉽게 잊고 이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이 밤, 낡은 냉장고가 여러 생각을 내게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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