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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먹는다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또는 살아 있기를 희망하는 존재들에게 필연적으로 부과된 일이다. 그만큼 먹는다는 건 중요한 일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존재의 치명적인 약한 고리이기도 하다. 더욱이 먹는 일과 먹이는 일은 도덕적 미학적 가치 부여 이전에 그 행위 스스로의 위엄으로 순결해 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위엄을 향수로 자극하는 사물 중 하나가 국자라는 살림도구이다.

국자의 근원은 조개껍질이다. 석기시대에도 제 역할을 했으니 역사가 짧지는 않다. 우연인지 몰라도 조개나 지금의 국자 모두 둥글고 깊다. 둥굴게 융기된 뒷면과 뜨거운 국물을 온전히 뜰 수 있게 움푹 들어간 앞면 그리고 국물을 그릇으로 온전히 이동할 수 있게 만들어진 굵고 긴 국자자루는 향수를 자극한다. 그것은 국자의 모양이 북두칠성을 닮았다는 반짝이는 향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국자에서 연상하는 두 가지가 내게는 있다. 첫째가 어머니의 젖가슴을 연상케 하는 둥굴게 융기된 국자의 뒤 면에서 모성을 생각하게 되고 또 하나, 어릴 적 한 반이었던 국자라는 친구에 대한 추억어린 향수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앞 자리에 앉았던 이 친구는 이름 때문에 참 많이도 놀림을 받았었다. 국자는 찹쌀 도너츠 집 딸이었다. 10살의 어린 그 애의 몸에서는 늘 기름 냄새가 났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애는 하교 후에 가게에서 동생도 보고 도너츠 튀기는 일도 돕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옷 앞섶은 기름과 때로 찌들어 반들거렸다. 그 애는 거의 말이 없지만 또래아이보다 어른스런 면이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국자 오 국자하고 놀려도 장난꾸러기 동생을 바라보는 듯한 눈길만 보낼 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 애가 반응을 보이지 않을수록 짓궂은 아이들은 국자를 놀렸고 급기야 선생님께서 걱정을 하시며 타일렀지만 놀림은 그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국자를 다시 보게 된 어떤 계기가 있었다.

하루는 아침수업 중인데 갑자기 교실 문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께서 들어오셨다. 모두 무슨 일인가 쳐다보니 등에는 아기를 업고 계셨고 손에는 누런 봉지를 들고 계셨다. 선생님께 공손히 인사를 하시고 국자엄마라고 자신을 밝히면서 도너츠인데 아이들과 같이 나눠 잡수시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우린 도너츠를 하나씩 받아들었다. 따끈따끈한 도너츠를 다들 맛나게 먹고 있는데 한 아이가 도너츠가 맛없다면서 국자에게 도로 가져왔다. 그 때 국자의 표정은 너무도 담담하고 침착했다. 그 애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네 줄려고 만든 건데..." 라며 받아 든 도너츠를 제 입으로 가져가는 거였다. 순간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먹던 행동을 멈추고 국자를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도 10살짜리 아이 행동이라고 보기엔 너무 철이 일찍 들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별거 아니라는 듯 도너츠를 먹던 아이. 지금 국자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적어도 국자는 자신을 놀렸던 친구들을 미워하지는 않았으며 다 같이 나눠먹을 줄 아는 따듯한 심성의 아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도너츠를 팔아 근근 살아가던 환경 속에서도 따듯함을 잃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드는 생각이 있다. 어쩌면 어린 국자에게 먹는다는 건 생명이고 돈이고 살아가는 힘이라는 걸 진즉 깨달았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내게 국자라는 사물과 친구 국자가 불러일으키는 향수는 아마도 둥긂과 먹인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한 국자에 떠 올린 무수한 국물들. 국자 속에 담겼던 낱낱의 알곡과 채소와 비린 것들은 익혀지고 부서지고 뭉개지고 흩어져 맛을 우려내 목구멍을 통해 우리의 몸을 섬기면서 대지로 돌아갈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물음이 들어온다. 너의 몸은 먹는 일만 하는지. 내게 어머니가 해 주신 먹이는 일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오늘은 내가 국자가 되어 내게 묻고 돌아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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