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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캄캄한 밤, 불을 끄고 거울 앞에 앉아 본 적 있는가. 오늘처럼 봄밤이었다. 사춘기소녀는 거울에서 운명의 남자를 볼 수 있다는 풍문에 온통 마음이 쏠려있었던 것 같다. 그 밤, 소녀는 방문을 잠그고, 전깃불을 껐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초에 불을 붙인 다음 거울 앞에 앉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며 하나 둘 셋... 열까지 센 다음 눈을 떴다. 그러나 운명의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을 보아도 거울 속에는 '나'만 있었다.

이젠 사춘기시절이 있기나 했냐는 듯, 기다림도 설렘도 없다. 습관처럼 아침이면 볼 일을 보고 세면대로 가서 벽에 걸려 있는 거울을 자동적으로 본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별 생각 없이 쳐다본다. 오래 전이나 다름없이 거울에는 변함없이"나"가 있다. 그러고 보니 이 자동적 행위는 나 자신에 대한 기억이 생기던 어린 시절부터 반복 되어왔다. 요즈음은 한 달이 멀다하고 올라오는 흰 머리카락과 늘어지는 주름도 그러하지만 그보다는 오늘의 얼굴빛을 살피게 된다. 그러면서 가끔 내게 내가 묻는 말이 있다. 늙어가는 거 자연스런 일인데 왜 날마다 거울을 보고 있냐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야 젊고 아름다워 자신이 자신에게 반해 자신인줄 모르고 물에 빠져 죽었다지만 나는 그것도 아닌데 말이다. 솔직히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그냥 보는 때가 많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이런 행동이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의 연속성을 확인하려는 무의식에서 나온 습관적 행동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왜냐면 나이를 더해가면서 이 연속성이 모여 자신에 관한 스스로의 이미지인 정체성이 되는 것 일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정체성은 영어로 아이덴티티(identity)라고 하는데 이 말은 본래 '같음' '동질성'이라는 뜻이다.

그 같음을 확인해 준 게 거울 일 게다. 원시사회에선 거울의 기원인 물을 통해 나를 보았을 것이고 문명사회로 들어서면서 나와 남과의 다름을 거울을 통해 인식했을 것이다. 거울이 그 역할을 했다. 백설 공주의 요술거울이 그랬고 나르시스가 바라본 물거울도 그랬다. 있는 그대로를 반사한다는 것은 거짓이 없다는 말. 사실을 그대로 비추니까. 어제와 오늘, 10년 전의 내가 같다는 걸 인식했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정체성으로 연결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거울은 몇 십 년 전이나 지금도 나의 얼굴 이미지가 같다는 연속성을 형성해 주는 도구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젊은 시절엔 자신의 민낯을 보기 보다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았던 건 아니었을 까 싶다. 그러니까 거울을 봐도 건성으로 흘깃 지나쳤을 것이다.

자신의 본 모습을 흘깃 지나치는 것, 어쩌면 그것에 거울의 비밀이 있는지 모르겠다. 여기서 거울의 비밀이라는 것은 무엇을 감추거나 무엇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발견할 무엇을 지닌다는 말이다. 사춘기시절 운명의 남자를 거울 속에서 보고 싶어 했던 것도 정체성의 시발에 해당되지 않았을까 싶다. 돌아보면 오래 전 봄밤의 사건은 일련의 호기심과 성장 통에 기인한 철없지만 자연스런 행동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매일 거울을 보고 있다는 건 외모의 변화뿐이 아닌 나의 얼굴에서 지난 세월의 흔적들이 연결되어짐과 동시에 거기에 스며든 여러 빛깔의 삶의 무늬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 무늬들의 중앙에 '나'의 자취가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양치를 하거나 손을 씻을 때 흘깃 볼 때가 많다. 그러다 가끔은 한참을 고요한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한다. 변함없이 거울 속에는 여전히 '나'가 있다. 거울은 그렇게 나에 대한 동질성을 확인해 주고 연속성을 이어주고 있다. 나의 외모가 어떻게 변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살아있다는 것 이것처럼 좋은 게 있으랴. 오늘도 나는 그에게 말을 건다. 나 예뻐?하며 소녀가 되어보기도 하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누님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거울 앞에서 술래가 되기도 하고 숨는 아이로 돌아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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