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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산책길에 클로버꽃이 한창이다. 유년시절의 클로버꽃 반지가 생각난다. 그때 우린 들판을 뛰놀다 지치면 풀밭에 엎드려 반지를 만들었다. 두 줄기의 꽃대를 꺾어 한 줄기의 꽃턱 바로 밑에 손톱으로 흠을 내고 다른 줄기가 꽃대의 상처를 관통해서 완성되었던 꽃반지. 서로의 손가락에 끼워주며 그 애와 나는 하나가 되어 우정을 약속했다. 이젠 그 풀꽃 반지도 세월 속에서 아련한 추억으로 흘러가 버리고 그 자리에 두 개의 다른 의미의 반지가 있다.

첫 번째 반지가 다름 아닌 결혼반지다. 클로버 꽃반지가 우정의 반지였다면 결혼반지는 추억이 아닌 이성과의 강력한 약속이요 현실이니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감성적이고 순정적인 반지가 사라지고 현실의 반지가 삶에 끼워진 것이다. 철부지였으니 얼핏 구속의 느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내 결혼이라는 약속을 함으로서 둘은 하나로 연결되었다. 우주를 향한 몸의 문이 열린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라는 의미였던 결혼반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된다는 건, 인내의 시간이었다. 게다가 하나가 되기 위해 나를 비워야 했던 시간들이다. 지금도 알 수 없는 깊음. 얼마나 많이 비워야 했던가.

비운다는 의미를 젊을 때는 몰랐다. 아니 왜 '나'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이 많았다. 20여 년 전, 삶이 아주 힘들 때다. 두 번째 반지 얘기다. 딸의 모습을 안타까워하셨던 어머니께서 내게 반지를 주셨다. 어머니가 가장 아끼던 보랏빛 자수정 반지다. 그때 어머니는 "얘야 이 반지를 끼고 있으면 온갖 어려운 것들을 이겨낼 수 있단다 ". 사실 어머니 말씀대로라면 세상 누군들 이 반지를 안 끼겠는가. 그러나 어머니가 주신 반지는 그냥 반지가 아니라 자식을 향한 진심 어린 사랑의 반지다. 어려움 앞에서 슬퍼만 할 게 아니라 나를 비우는 일이라는 걸 어머니께서 반지로 말씀하셨던 것 같다. 가끔 이 반지를 끼어본다. 손마디가 굵은 어머니가 끼셨던 거라 많이 헐겁다. 그러나 이 반지를 끼는 순간 어머니와 나는 하나가 된다.

내게 있어, 둘이 하나가 됨을 의미했던 반지. 언제부터 사람들은 반지에 약속이란 의미를 부여했던 걸까. 확실한 논리적 이유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다. 그러나 자세히 반지의 모양을 바라보면 전혀 의미가 닿지 않는 것도 아니지 싶다. 하나의 사물에도 사람과 이어진 스토리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반지는 장신구의 일종이며 자기 관심에서 출발한다. 이미 선사시대부터 장신구 사용이 있었으며 장신구 중에서도 유일하게 약속을 의미하는 사물은 반지였다고 하니 대단히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개인 간 약속의 표징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역사기록에도 나타나 있다. 원나라의 속국이었던 고려 말기에도 원나라로 끌려가는 부녀자들에게 부모와 친척들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는 징표로 반지를 건네주는 풍습이 있었다. 원나라에서 크게 유행한 고려풍습을 고려양(高麗樣)이라 불렀는데 고려양의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끌려가는 부녀자들 손가락에 끼고 있던 고려식 반지였단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반지는 약속만을 의미하는가이다. 반지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된 장신구로 사용되었지만 반드시 약속의 의미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서양에서는 가문의 인장 대신 쓰이기도 했고 계급적 권위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했단다. 인기리 방영된 판타지 영화 '반지의 제국'이나 '니벨룽의 반지'에서의 반지가 상징하는 의미를 보더라도 권위와 힘, 권력, 인간의 욕망이 반지와 연결되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 외 돌 반지나 졸업 반지는 장수, 축하의 의미도 있다. 그럼에도 약속의 함의를 포함하는 상징적 장신구는 반지가 유일했다는 것은 특이한 개념 사항이다. 거기엔 아마도 그럴만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물의 본질은 사물의 형상에 있다고 했다. 우린 이 본질을 자주 잊는다. 왜 반지는 세모도 네모도 아닌 둥근 모양이며 게다가 비어있는 링으로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반대 방향으로 향하기만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반지는 형상으로 말한다. 구부려서 진심으로 서로를 만나야 한다고. 이때 강제나 구속성으로는 진정한 약속의 힘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와 만나든 그렇지 않을까. 완강한 자기주장보다는 공동의 비어있음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만남이 이뤄질 것이다. 그걸 모든 반지의 형상이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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