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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다. 식구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어느 날이다. 아버지는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무엇에 빠진 사람처럼 하염없이 창밖을 보고 계셨다. 그때 등을 돌리고 서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얼핏 찬바람에 떨고 있는 작은 새를 떠올렸던 것 같다. 쪼그라든 몸, 가냘픈 팔다리, 구부정한 등. '아 아버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날 아버지의 뒷모습은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 15년 전,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 쇠이(vliheim hammershol)만큼 뒷모습을 많이 그린 화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평생 뒷모습에 천착한 화가다. 한국 관객엔 낯설지만 2021년 북서울 미술관에서 열린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전시 때 '실내'라는 딱 한 작품으로 소개된 적이 있다. 그의 화풍은 시적이고 고요한 회색 톤의 초상화와 단순한 생활방식이 가구나 채색을 통해 나타낸 실내 풍경화로 유명하다. 그는 대부분 실내를 고집했으며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그렸다. 특히 그의 그림에 나타난 뒷모습의 여인은 언제나 내면에 고요히 흐르는 침잠한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단순 우울한 그의 그림이 요즘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있단다. 무엇이 사람들 마음을 건드리는 걸까.

학자인 스티븐 라이스는 인간에게는 16개의 기본욕망이 있으며 이것이 행복 성취의 동기를 부여하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여기엔 부족하고 미련한 인간의 원형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때문에, 인간은 행복을 열망하고 성취하기 위한 욕망으로 출렁인다. 사실 누구에게나 행복이 주어지는 건 아니련만 사람들은 행복 열차를 간절히 기다린다. 하지만 어떤 이는 올라타거나 누군가는 놓쳐서 절망하고 슬퍼한다.

문제는 작은 행복에 만족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이다. 욕망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자신은 물론이고 주위까지 파괴해 버리는 사람들을 일상에서 목도 하기도 하고 문학작품이나 영화에서도 본다. 예로 보바리의 주인공 엠마와 영화 레이디 맥베스의 캐서린이다. 욕망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까지 파괴한 캐서린. 모든 파괴가 지난 뒤 휑한 집안에서 등을 돌리고 홀로 서 있는 캐서린의 뒷모습. 대책 없이 낭만적 소비로 스스로를 파괴한 엠마의 뒷모습. 욕망이 타버린 쓸쓸한 벌판에 홀로 서 있는 여인들의 뒷모습, 이때 훅 밀려오는 씁쓸함과 인간의 근원적 고독이 사람의 마음을 건드린다.

뒷모습에는 어떤 설명도, 몸짓도 없다. 실제와 다르게 꾸밀 수도, 잠시 속일 수도 없다. 타인은 그저 바라보며 상상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게 뒷모습만이 가질 수 있는 정직한 표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뒷모습 역시 자식이라도 전부를 알지 못하기에 짐작하고 때론 감사하고 안쓰러워할 뿐이었다. 활달하고 씩씩한 분이었기에 외롭거나 쓸쓸할 분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왜 유독 쓸쓸함을 느꼈을까. 어쩌면 나는 여태 아버지 얼굴에서는 보지 못했던 정직한 표정을 뒷모습에서 읽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버지도 한 인간이셨다. 전심전력으로 걸어오신 길이 마지막을 향해 간다는 걸 왜 모르셨겠는가. 아버지는 그날에서야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뒷모습을 들여다보고 계셨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고독의 다른 해석은 자신에게 흠뻑 빠지는 일이다. '나'에게 몰입할 때 그건 외롭거나 공허한 게 아니라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며 사유에 빠지는 일이다. 뒷모습의 그림들이 상상과 사유의 시간을 건넨다. 나를 돌아본다. 살면서 몇 번이나 나의 뒷모습을 들여다보았던가. 때로 그림 보는 일이 현실의 나를 되새기는 일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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