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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아주 오래 된 영화지만 무척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쫒기는 여주인공과 그녀를 찾으려 혈안이 된 악당과의 숨 막히는 서스펜스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그녀가 쫒기고 쫒기다 마지막 숨은 장소는 냉장고 뒤. 그런데 맙소사 작은 문틈에서 새어나오는 한 줄기 빛에 그녀가 위태롭다. 고요와 공포 속에 긴박함과 위험을 알리는 불안한 음악이 흐르면서 여인의 수 만 가지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이어 전체 화면이 깜깜해 진다. 검은 색이다.

 색과 빛의 절대적 조화였다. 그건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였으며 뜻밖의 감동이었다. 방금 전까지 죄어오던 긴박감과 스릴은 어디가고 한 순간에 난 화면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모든 것을 흡수한 어둠은 검은 색으로 선명하다. 어둠은 빛이 있음으로 화려했고 빛은 어둠의 배경아래 찬란했다. 그랬다 검은 색은 그냥 어둔 것에서만 그친 게 아니고 빛은 그저 밝은 것에만 머문 게 아니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날의 검은 색은 잊혀졌다. 나는 여전히 검은 색은 어둡고 노란색은 밝다는 데 머물러 있었다. 검은색을 특별한 상황 또는 상징적 이미지로 생각했다. 그것은 아주 어려서부터 받은 교육이나 문화, 생활의 영향이 크겠지만 그보단 어둠이라는 원형적 영향과 나의 뇌리에 박힌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어둠이나 밤은 검은색으로 칠했고 죽음을 의미하며 장례식장이나 상가 집을 검은 색으로만 인식해 왔다. 나가서는 악마나 악당 불안과 음침함을 대신해 표현했고 대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어둡다' '기분이 좋지는 않다'로 굳혀진 터였다.

 그런 색에 대한 고정된 관념은 세계적 명작 앞에서도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반 고흐 빈센트의'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 앞에서였다. 그가 바라본 밤은 푸르렀다. 캄캄한 밤이지만 그조차도 색을 가진 밤을 그렸다는 고흐의 설명처럼 밤하늘이 짙은 푸른색으로 칠해졌다. 푸른 밤을 보는 나는 의아했다. 왜 밤인데 푸르게 칠했는지, 푸른 밤인데 어떻게 별이 저렇게 노랗게 반짝일 수 있는 건지 의아했고 한편으로 위대한 작가니까 독창적으로 그렸나보다며 단순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작가니까 그렇게 그렸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편협 된 생각이었던지.

 이번에 이사를 하면서 많은 걸 버렸다. 그 중에서도 언젠가 입겠지 하고 버리지 못했던 옷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무심이 지났던 한 가지 현상에 흠칫 놀랐다. 내 옷 대부분이 검은 색이이었다. 왜 검은 색이었을까.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편하고 무난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색이 주는 아름다움에 시선이 변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내게 물었다. 곧 바로 답이 돌아왔다. 이제 옷의 색이나 미(美)보다 옷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마음이 답한다. 참 인간이 간사하긴 하다. 몇 년 까지만 해도 특정한 날이나 장소에만 걸쳤던 색이다. 아니 검은 색은 평범하고 편한 색이 아니라 특별한 색이라고 굳게 믿었던 내가 아니었던가. 몸과 마음이 단순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화려하고 밝은 것만이 아름답다는 생각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부차적인 것들이 주인이 아니라 그것들이 갖는 팩트에 집중해 가고 중인지 모른다. 옷은 입는 것이고 밥은 먹는다는 게 제 본질이듯 말이다. 어떤 색이든 자신이 아름답게 바라 볼 일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삶도 그럴 것이다. 아마 그렇게 마음의 풍경을 내가 만드는 것이리라. 내 마음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일 게다.

 올 한해, 아직도 깨트리지 못한 고정관념 때문에 혹여 둥둥거렸던 건 아닐까 돌아본다. 사실이 전부 진실일수는 없지만 일단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려한다. 가끔 착각도 있을지 모르나 밤하늘은 검은 색으로 칠해야 되고 밤은 어둠이라는 고정된 생각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다 보면 색은 색일 뿐이고 하늘은 하늘 일 뿐이라는 본질에 다가가지 않을까. 꿈속에서 헤어나려면 꿈에서 깨어나야 하고 도둑무리에서 나오려면 도둑 굴에서 나와야 벗어난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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