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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붓과 함께한 세월이 얼마던가. 닳고 닳은 붓이건만 머뭇거림이 없다. 그래서일까. 붓질은 생각보다 힘차 보였고 보는 이의 정신을 압도한다. 어떤 산수화가 저리도 사람을 압도했던가. 그저 마음을 밝고 편안하게 해주었던 게 보통의 산수화였건만 친구를 생각하며 그리는 노화가의 붓끝에는 뜨거운 용암이 흐르듯 무섭도록 센 기가 느껴진다. 청주 박물관 전시장에 걸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 앞이다

한마디로 웅혼하고 장엄하다. 아니 장엄하고 웅혼함만 있는 게 아니다. 비가 갠 인왕산에 서리는 물안개의 피어남은 희망처럼 그가 당도한 슬픔을 한 번에 뒤로 물리치며 산허리를 에워싼다. 마치 피어나는 꽃처럼 출렁이는 물결처럼 그를 설레게 한다. 그리고 설렘은 결국 절절함으로 이어진다. "산은 여전히 변함없건만 자네는 왜 오지 못하고 있나'라며 애통해 한다. 부디 60년 지기 이병연이 변하지 않는 바위의 장엄하고 굳센 기를 받아 병환을 털어내고 일어서길 기원하며 붓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랬다. 그저 고요하고 안쓰런 마음으로 감히, 겸재 선생의 붓끝을 따라가고 있다. 가끔씩 떨리는 듯, 바로 잡는 듯 일흔여섯 노인의 허물어진 슬픔의 붓질이 안쓰럽다. 사실 겸재 선생은 영조시대 때 거장으로 예술뿐 아니라 주역에도 밝았던 분으로 대표작인 도경설해를 비롯, 수십 권의 책도 내셨던 학자요 화가요 철학자였다. 그가 세운 진경산수화의 특징은 우리 산천을 우리 특유의 기법으로 그려냈다는 점으로 자연의 순리를 소중하게 생각했으며 예술과 철학을 삶에 실천했던 분이다. 더구나 이 그림을 일흔여섯 고령에 그려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건네고 있다.

우리 산수, 우리 산천을 사랑했던 그가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무얼까. 단순히 우정과 비통함뿐이 아니었으리라. 다시 말해 이 작품엔 그가 추구했던 진경산수화의 진수만 담겨 있는 건 아닌 듯싶다. 어쩌면 이 작품에는 두 분이 추구하고 실천했던 주역의 철학이 그림에 나타나 있는 건 아닐까. 주역에 대입해 자신의 호도 겸재로 썼던 그가 아닌가. 그가 성장하고 추구했고 실천했던 그리고 두 분이 마음을 오래도록 함께 했던 세상 만물에 대한 순리와 중용이 담겨 있던 건 아닐까.

선생은 전라도 광주 사람으로 선생의 조상은 퇴락한 양반 집안으로 일직이 서울로 상경해서 인왕산 부근 순화동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때 만난 이가 6살 위인 시인, 학자인 이병연이다. 두 분의 우정은 무척 담백하고 은은하다. 거장임에도 겸재의 그림에 병연의 시를 넣어 서로를 격려하고 정을 나누었을 정도다. 마치 자연의 순리처럼 담담하게 예술적 인문학적 교류가 오고 간 것이다. 여기엔 두 분의 일관된 주역의 철학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인 바위 산 안개 나무가 그렇고 산 아래 사람 세상이 그려져 있다. 자연과 인간 세상이 서로 따로가 아닌 변화 속에서 서로 연결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자연의 이치와 변화가 핵심이요 뼈대다. 그러면서도 그 속에 변하지 않는 줄기가 있다고 보고 있다. 즉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해와 달이 갈마들어 밝히고 부모는 자애를 베풀고 자식은 그를 받들어 모시는 것과 같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질서를 담았다.

훌륭한 작품이란 어떤 것일까.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산뜻하거나 잠시 반짝이는 그림일까.

내가 아는 좋은 그림이란 영혼이 담긴 작품이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도 우정도 사랑도 세상 순리도 그러하지 않을까. 잠깐 눈을 현혹하는 쌈박함과 화려함에서 어찌 영혼을 구가할 것이며 그런 우정이, 어찌 오래 갈 수 있을 것인가. 그림에 스며있는 영혼의 소리를 들으며 문득 현대문명 속에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영혼의 소리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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