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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어둠이 깊어졌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이런 밤에는 가로등 불빛이 더 또록하게 보인다. 어두워야만 존재를 인식하게 되기에 그렇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가로등을 내려다본다. 가늘고 긴 몸통 위에 빛이 발산되는 머리는 아래를 향해 구부러진 형상이다. 그가 발산하는 빛은 언제고 한결같이 낮은 곳을 향하고 있다. 게다가 외눈박이 눈으로. 그러나 외눈박이라고 우습게 보지 말라. 그에게서 발산되는 빛은 생각보다 더 넓게 골고루 낮게 퍼져 있다.

넓게 골고루란 말은 평등의 의미를 품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에게나 모두 차별이 없다는 말일 게다. 인간 세상에 실제로 있는 상황일까. 난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있다면 그건 평등을 가장한 전체주의 홍보일지 모른다. 그런데 그게 사물인 가로등에겐 가능하다는 근거는 무얼까. 우선 그가 발산하는 빛을 자세히 보자. 사방을 덮고 있는 밤의 공간의 넓이와 시간의 깊이 즉 어둠의 중량에 비한다면 이 한 줄기의 빛을 과연 빛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겨우 빛나는 반딧불처럼 이 사물의 빛을 다른 무언가를 비추는 빛이라 할 수 있을까.

가로등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빛은 실낱같은 희망의 가능성으로 오히려 어둠 속에서 제 존재를 분명히 드러낸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절박하게 어둠 속을 걷거나 음산한 골목길에 있을 때 멀리 있는 가로등을 보며 안도하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사실 이 사물에서 나오는 빛은 어둠의 전체와 비교할 때 비추는 빛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로등은 거꾸로 우리에게 말한다. 어둠 속에서 나타난 빛의 진정한 빛은 어둠을 전면적으로 제거하는 데 있는 게 아니란다. 가로등의 역할은 빛이 사방의 어둠 속에서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예감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얘기다. 마치 밤바다의 등대처럼.

여기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예감한다는 건 무언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빛보다 더 중요한 게 무언가. 상대의 손을 잡아 줄 수 있다는 희망의 시그널을 안겨준다는 말이다. 헐벗고 무섭고 외로운 마음에 위로를 건네는 건 인간의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그걸 일차적으로 건네는 게 가로등이 인간에게 건네는 존재의 예감일 게다. 그 빛이 강하든 약하단 간에 일단 희미하나마 뭔가가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준다는 얘기 아닌가. 그걸 사물에서 보고 느낄 때가 있다.

더러 깊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멀거니 가로등을 내려다본다. 창마다 불이 꺼지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지나지 않는 밤. 어둔 밤길에 그가 홀로 서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독한 성직자의 뒷모습을 보는 듯 또는 외로운 소녀를 떠올린다. 나의 이런 떠 올림에는 두 가지 의미가 복합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가로등의 구부러진 형상에서 낮은 곳을 향한 성직자의 거룩한 모습과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가로등을 통해 공감하고 위로 받는 쓸쓸한 인간의 영혼,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2013년이었던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이 타임지에 실렸었다. 이어 2014년 교황의 서울 방문이 생각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낮은 자 가난한 자들을 위한 발을 닦아주고 입맞춤을 하는 세족식을 가졌었다. 수많은 의식이 있었음에도 세족식을 한 이유는 무언가. 발은 인체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부위이기에 상징적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가난하고 헐벗고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낮은 곳에 임하라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진정한 삶이란 물질적 양이 아니라 삶의 방향에 있을 것이다. 이때 하나의 몸짓, 한마디의 말, 하나의 손짓은 누군가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하여 빛이 밝혀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이때의 희망은 한결같은 시그널의 지속성이다. 이제 살 수 있겠다는, 살아야겠다는 용기를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가로등의 눈빛은 그걸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언뜻, 가로등에서 거룩한 이의 모습을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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