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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처음부터 길이 있었던 건 아니다. 누군가 길을 만들었기에 다음 사람들이 수월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덕수궁 미술관에서 처음으로 한국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관람했었다. 그리고 올해 10년 만에 한국 근현대 작가전을 소마 미술관에서 다시 만났다. 달라진 게 있다면 기획의 변화다. 5개의 주제별로 구분을 지어놓았다. 그중에서도 눈에 띈 건 여성 화가들과 납북된 화가들의 방 그리고 조각 부문을 따로 마련했다는 점이다.

사실 먹고 살기 어려운 시대에서 그림은 사치품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시대적 공간적으로 어려웠던 한국 미술 역사는 서양미술에 비해 아주 늦게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처음 미술의 길을 냈던 근대 작가들은 이런 삭막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이분들의 그림에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인의 자존감을 잊지 않고 우리 그림, 우리 조각의 진정한 얼굴을 스스로 그리고 스스로 새기는 자리라는 걸 늘 잊지 않았다는 점과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미쳤고 즐겼다는 점이다. 대표작가로 김복진 고희동 김관동 이어 구본웅 박생광 박수근 이중섭 이인성 장욱진등이 이에 속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뿐이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았던 방들이 있다. 두 번째 방이었던 민족사의 여백 방이다. 한마디로 여태 남한에서 확 펼치지 못했거나 않았던 이념으로 갈라져 북한이나 소련등에서 활동하다 돌아가신 변월룡 이쾌대 배운성 황용연 등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민족의 아픈 여백으로 남아 있는 화가들이다. 세월이 시대가 많이도 달라졌다. 세계화의 국가로 발전함에 따른 열린 소통의 결과라고 보고 싶다.

다음이 여성 화가 방인데 10년 전보다 훨씬 위상이 높아져 보인다. 여성화가 방의 주제가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라고 명기되었다. 대표적으로 여성 최초 최다의 수식어가 붙는 비운의 나혜석을 필두로 박래현, 이성자, 천경자, 최욱경의 예술이 게시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여성미술은 그 존재가치로 선구적 이례적 적극적 숙명적이라고 생각한다. 선구자의 운명이 그렇듯 불같은 생애와 예술 모두가 한 편의 시 소설 드라마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이라는 땅에서 시대적 공간적 고난과 질곡을 딛고 일어선 여성의 승리이다. 또한 이 여성 화가들이야말로 페미니즘의 맹아 아닐까.

마지막으로 추상 부문과 조각 방이다. 추상 부문에서 단연 김환기 작가가 먼저 보였고 아마도 이 부문은 미술의 암흑기에서 벗어난 한국 미술이 세계로 발돋움 하는 과정의 한 부문이라 본다. 중요한 건 이분들이 노력도 노력이지만 조국과 땅을 죽을 때까지 간직했고 작품에 투영시켰다는 점 일 게다. 끝으로 조각 부문인데 권진규 김정숙 문신등이 인상적이다. 조각 전시는 부피 공간의 제약으로 잘 전시가 되지 않았는데 이번 전시에 특별히 방을 마련했다는 데 고무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서양 조각을 한국에 알린 청주 출신 김복진 작가의 작품이 보이지 않아 매우 섭섭했다.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건 자신만의 길을 가는 일이다. 여기에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토대로 한다는 분명한 결이 있다. 새롭다는 게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지 않은가. 자신만의 확고한 가치관과 예술관이 확고해야 이뤄질 일이다. 어찌 보면 삶도 그렇지 않은가. 우리 모두 이 고독하고 힘든 길을 가고 있다. 오늘 이 전시는 이미 먼저 그 길을 열정과 꿋굿함으로 버티고 견뎌 새로운 길을 만들었던 작가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과연 나는 지금의 이 지점에서 어떤 새로운 길을 만들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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