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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잔돈을 찾다가 뜻밖에 네잎클로버가 나왔다. 평소대로라면 책갈피나 수첩 속에 있었을 텐데 엉뚱하게도 헌 지갑 속에 들어 있었다. 아마 깊게 둔다고 넣었는데 잊고 있었나 보다. 아무튼 겨울에 클로버를 보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다. 강산이 한 번 지났으니 그럴 만도하다. 클로버는 너무 바싹 말라 손끝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젠 마른 잎에 불과하건만 여전히 메시지는 행운의 의미로 다가온다.

13년 전 군대에 가 있던 아들은 이 네잎클로버를 보내왔다. 미련한 게 사람이라고 생의 단애(斷崖)에 서면 사실이나 논리보다는 말이나 의미에 약해지고 의지하게 되나보다. 꽃말이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거란 걸 왜 모르겠는가. 그런데도 한없는 절망, 절박함에 간절히 행운을 아니 행운 비슷한 빛이라도 비춰 달라며 빌고 또 빌었던 즈음이니 오죽했겠는가. 그때 네잎클로버는 한낱 식물이 아니라 어떤 계시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편지와 네잎 클로버를 받던 날 나는 생의 반전이 이뤄지리라 믿었다. 믿음은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간절히 기다리고 간절히 원한다고 행운이 오는 게 아니었다.

행운이란 단어를 동경했던 시절이 있었다. 막연한 동경은 순수했고 그래서 더 아련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학창시절이다. 운동장 끝 울타리 근처엔 아름드리나무들이 서 있고 그 아래엔 넓고 푸른 잔디가 깔려 있었다. 수업이 파하면 우리들은 하나 둘 나무 아래로 모여 재잘대다가 시들해지면 너나없이 풀밭을 뒤적인다.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네잎클로버를 찾은 친구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좋아하며 신나했다. 우린 석양이 풀밭에 내려앉을 때 까지 헤맸다. 보물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기적처럼 나타나면 짜릿한 전율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기도 했다.

어찌 생각하면 행운이란 빛을 향해 헤매었는지 모른다. 네잎클로버를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온다는 풍설을 믿고 막연히 풀밭을 뒤적였던 소녀시절이 떠오른다. 학교를 졸업하고 청춘의 풀밭에서 미래의 꿈을 찾아 헤매었던 시간들이 지나간다. 결혼을 하고 삶의 전장 속을 헤매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으려 퍼득대던 시절도 있었다. 그토록 행운을 갈망했던 단애(斷崖)의 시간도 지났다. 세월이 흐르고 어느 새 아이들도 제 각각 자신의 생활로 돌아갔다. 모든 것이 지나고서야 내게도 행운이 함께 했었음을 깨닫는다. 행운은 일상 속에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엇 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니 그보다 큰 행운이 어디 있을까 싶다. 더구나 살아있다는 것, 가족과 좋은 이웃들이 있다는 것 이 모두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그럴싸하게 나이를 먹는 것은 좋은 일이다. 대체적으로 60대로 접어들면 삶의 굴곡을 몇 번은 넘나들었던 경험을 지니게 되는 것이 보통사람의 삶이다. 이젠 할 일과 해선 안 될 일을 분별하게 되고 더 이상 허황된 꿈이나 가당치 않은 희망을 품지 않게 된다. 대신 육체가 쇠해지고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진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인 것을 어쩌겠는가. 그보다는 이제부터라도 남은 날들을 차분하게 보내고 싶다. 이제 행운의 의미는 지금 이 자리 이 순간들을 소중하게 맞는 일이다. 그건 다름 아닌 괜찮은 시간들을 위한 일상의 준비일 테다.

극작가 윌리엄 테네시가 행운에 대해 쓴 글이 있다. 행운이란 자신의 일상(日常) 속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우선 감사하라. 진심만을 말하라, 단정하게 입어라, 똑똑한 척 마라. 인내하라, 마음을 편히 가져라. 남을 탓하지 말라. 질투심을 버려라.

늙으려고 세상 끝까지 가고 있나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마른 잎처럼 반드시 사라질 삶, 모든 그리운 것들을 내려놓고 떠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물을 때도 있다. 몸 흔드는 나뭇잎 사이로 미련이 눈발처럼 날리겠지만 참회하고 있는가 묻기도 한다. 그럼에도, 괜찮게 늙어간다는 건 행운이요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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