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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4.02 15:09:11
  • 최종수정2023.04.02 15:09:10

홍성란

수필가

척 봐도 공주님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가. 보통의 어린아이한테서는 잘 보이지 않는 이 우아함과 도도한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아이는 이제 다섯 살, 스페인 왕 펠리페 4세의 딸로 최고 궁정 화가였던 벨라스케스의 작품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공주'의 당사자이다. 그런데 왠지 표정보다 옷에 시선이 더 간다. 우아함도 우아함이지만 드레스 질감을 어찌나 정교하고 생생하게 표현했는지 옷이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 전'에서 처음으로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본다. '시녀들'과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현존하는 3개의 공주 초상화 중 두 번째 그림이다. 친척이며 미래 시아버지인 페르디난트 3세에게 공주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보냈던 초상화란다. 어찌 보면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역사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역대 왕들의 초상화에도 역사가 숨 쉬고 있다. 정략결혼을 통해 합스부르크가는 유럽이라는 기틀을 세운 막시밀리안 1세를 비롯해서 예술과 과학을 사랑한 은둔형 수집왕 루돌프 2세, 갑옷과 이국 공예품에 매료된 수집광 페르디난트 2세 대공, 일생을 전쟁터를 전전하며 예술적 안목으로 회화를 수집한 레오폴드 빌헬름대공, 서민에게도 미술관을 개방하게 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마지막 왕 프란츠 요제프 1세 등 한 시대를 풍미한 그들의 이야기가 있다.

왜 그들은 초상화를 남겼을까. 가장 큰 목적은 제국의 권위와 영광, 위엄 업적을 가장 널리 국민들에게 알릴 수 있던 방법이 초상화 아니었을까 싶다. 여기서 화가들이나 예술가들의 경쟁도 치열했을 것이고 더불어 좋은 명작도 탄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품마다 하나같이 우아하고 생생하며 정교하고 다채롭다. 야자열매 주전자, 메달, 해시계 갑옷이 그랬고, 바로크 미술의 대가 루벤스, 스테인, 펠리페4세의 신임을 독점했던 국민화가 벨라스케스, 꽃 정물화를 개척했던 얀부뢰헐의 그림은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더불어 브르주아의 생활상과 의식 등 시대변화상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고종이 프란츠1세에게 선물한 갑옷과 투구가 전시되어 한-오스트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합수브르크가가 스위스의 작은 시골 공국에서 신성로마제국으로 일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정략결혼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역사의 파고가 출렁거렸던 것 같다. 유지하려는 욕망과 용맹함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빼앗아서 차지하려는 욕심과 탐욕이 없을 수가 없다. 드디어 근친결혼까지 이른 인간의 욕망이 자초한 불행이 합수브르크가의 왕실에서 나타난 것은 초상화에도 나타나 있다. 근친결혼에서 탄생한 주걱턱의 비극이 그것이다. 유전자적 비극은 단명하거나 소통이 불가능하고 식사조차 힘들어 거의 식물 왕으로 살았다고 역사는 전한다.

한마디로 이번 전시는 수교 기념 전시인 만큼 유럽 대부분 지역을 통치했던 합수브르크가의 역사와 예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이 전시가 다른 일반적인 그림 전시와는 조금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그런 면에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언의 의미를 실감하게 되지만 그건 관심만 있으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알고 보면 더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지레 읽는 그림이라고 외면하면 되겠는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제와 역사는 결국 사람이다"라는 명제를 생각해본다. 합수브르크가의 사람들은 사라졌지만 그 시대, 그들의 역사가 예술품에 남아 있다. 갑옷과 작은 공예품 하나, 한 장의 명화를 보며 내가 알고 있는 만큼의 이야기를 나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지 않던가. 합수브르크가 사람들이 예술품을 수집하고 잘 보존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으며 오스트리아의 빈이 예술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거기엔 '예술은 길다'라는 무직한 명제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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