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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마치 1900년대 한국의 가난한 농부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과 공감을 일으켰던 책이 펄벅의 '대지'다. 그만큼 감동이 컸던 작품이다. 미국인이면서 중국 농부의 영혼과 삶을 어떻게 이토록 직설적이고 서사시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을까. 드넓은 중국 대지에서 그녀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펄벅은 왕릉을 통해 땅을 대하는 그 시대 중국인의 관념을 이렇게 표현한다. "우리는 땅에서 태어났어. 그리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펄벅의 대지는 격동의 중국 사회를 배경으로 왕릉일가를 등장시켜 대지. 아들들. 분열된 집안 등 3부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 왕릉은 부지런하고 땅을 사랑하는 가난한 농부다. 그의 일상은 대지로 향하는 것으로 출발해서 땅에서부터 시작하고 땅으로 끝난다. 삶의 주체인 대지는 왕릉에게 어떤 의미였던가. 그에게 땅은 단지 재산이 아니라 그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고통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어머니며 자손은 물론이고 생명을 이어가게 도와주는 신의 선물이다. 그에게 땅은 삶의 전부였다. 땅은 그에게 생명이며 사랑과 애정 때론 애착의 대상이었다.

왜 아니 그럴까. 그가 천신만고 남쪽 도시에서 돌아왔을 때, 애욕의 상처로 괴로웠을 때 그를 낫게 하고 병을 고쳐준 것도 대지였다. 삶이 힘들 때, 가뭄과 홍수로 농사가 전멸했을 때도 그는 날마다 대지를 찾아 쟁기와 호미로 흙을 파고 주물렀다. 그때마다 흙은 자애로운 손길로 상처를 어루만지며 치료해주었다. 그리고 땅에서 힘을 얻어 다시 일어서곤 하였다. 그가 얼마나 대지를 사랑했는지 한 장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땅을 팔려는 생각으로 찾아온 자식들에게 죽음 앞에 선 왕릉은 "땅을 가지고 있으면 살 수 있다. 땅은 누구에게도 뺏겨서는 안된다... 만일 땅을 파는 날, 그것은 세상의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농부니까 땅에 대한 생각이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러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깊고 넓다. 여기서 펄벅은 독자에게 대지와 인간의 관계를 묻는다. 왕릉은 왜 땅을 갖고 있으면 살 수 있으며 누구에게도 뺏겨서는 안 된다고 했을까. 심지어 땅을 파는 날이 세상 마지막이라 말했을까. 나는 왕릉이라는 농부의 말에서 어떤 사회변혁에도 잡초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끈질긴 민초들의 대지에 대한 강건한 믿음을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왕릉의 말을 되씹어 본다. 그의 땅을 갖고 있으면 살 수 있다는 말은 땅에 대한 욕심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서 살 수 있다는 건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도 사는 건 사는 거다. 그러나 왕릉을 통해 말하는 살 수 있다는 건 대지와 인간,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에서 누가 주체가 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 걸 음미한다. 예를 들어 대지 앞에선 인간의 모습이다. 농민은 언제라도 배가 고프면 일손을 멈추고 먹고 마시고 잠들기도 하며 때로는 아름다운 일출이나 석양을 바라본다. 농민의 마음은 평화로 가득 찬다. 요즘 말하는 힐링이 저절로 되는 순간이다. 내가 주체가 되었기에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계 앞에서 인간은 어떤가. 짜여진 시간에 맞춰 기계를 조작 감시하고 돌려야 한다. 늘 예민하고 불안하며 피로하다. 쉬고 싶다고 아무 때나 기계를 멈출 수 없다. 기계가 주체이니 매뉴얼에 따라야 하고 여유가 없으니 날카롭고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다. 내가 주체로 살지 못하는 삶은 상황에 따라 늘 흔들릴 수 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대지가 인간에게 건네는 무한한 평화와 위안 넉넉함을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에게 삶의 터전은 대지다. 그러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사실적 현상이며 철학적인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린 대지에 살면서도 환상의 파라다이스를 그리워한다. 욕망일까 아니면 현대인의 허전한 마음의 발로인가. 만일 사람이 저 충실한 대지를 떠난다면, 땅 냄새를 잊고 산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가 이해하고 사랑한 것들이 우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로베르트 발저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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