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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나무 가지에 좁쌀만 한 움이 돋았다. 오늘 우수(雨水)가 지나면 경칩. 춘분 곧 3월이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는 봄바람이 의구하게 부니 풀뿌리 속잎이 맹동하며 개구리 우는 곳에 논물이 흐른다고 노래한다. 그런가하면 보습쟁기 차려놓고 논과 밭을 갈리라며 농사를 이야기한다. 하나의 가사 속에 아름다운 서정(抒情)이 흐르고 시간에 즉(卽)하여 사는 삶을 분명하게 읊고 있다.

숫자로 시간을 배우던 어린 시절이 있다. 언제 철이 들거냐던 어른들의 말씀을 건성으로 흘리던 철부지 때도 있었다. 몸보다 머리로 목표를 세우고 달려갔었다. 도착점에 도달했을 때 기쁨도 뿌듯함도 느껴보았다. 그러면서 시간이 왜 이리 늦게 갈까 생각한 젊음도 있다. 그런데 웬걸 지금은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느냐며 아쉬워한다. 나날의 삶에서 시간의 흐름을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날의 삶에 대한 불교의 가르침의 하나는 밥 먹을 때 밥 먹고 마루 닦을 때 마루를 닦으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농경사회의 삶은 매순간에 즉(卽)한 삶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것은 적어도 목표와 오늘 사이를 하나로 하는 일직선의 삶이 아니라 일 년 단위의 순환의 삶이 아니었을까 싶다. 농사가 근간이었던 농촌에서는 그 달에 맞는 농사일과 놀이, 노동과 삶의 보람, 개인과 공동체가 하나로 되어 사는 자연과 삶의 자연스런 혼용의 나날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그 원형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자연의 뿌리가 파헤쳐지면서 삶이 다른 형태로 변했다. 낮과 밤이 겹쳐졌고 자연을 떠난 떠돌이들이 떠돌면서 혼란해졌다. 물질만능 사회로 삶의 지형이 바뀐 것이다.

오늘의 세계는 사람으로 하여금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그것을 향하여 정진할 것을 요구한다. 그 목표가 반드시 세속적 부(富)나 명예, 권력 등이 아니라도 이런 목표에 의해 정당화 되지 않는 삶은 살만한 것이 아니라는 고정관념을 강요하는 것이 오늘의 세계다. 그런데, 돌아보니 목표를 달성했다고 삶이 참으로 값있는 것 이었던가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오늘의 삶은 산업과 도시속의 떠돌이 삶이다. 떠돌이가 되는 것은 모든 것이 이익의 계산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말. 실제 많은 현대인들이 목표의 삶에 무게를 두고 살아간다. 순간의 삶, 세속적 목표를 향한 삶이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의 최종적인 덧없음 앞에서도 가득한 삶이었다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그런 점에서 농경사회 삶은 살수록 허전해 하는 현대인들에게 일정부분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사실 어느 시대 누구든, 좋고 나쁨의 삶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삶의 역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삶의 형태는 다를 뿐이다. 순간의 삶, 목표를 향해 가는 삶이 오늘의 세계라면 농경사회의 삶은 세월의 순환에 따라 살았던 것 같다. 두 세계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도형이 그려진다. 직선과 원이다. 산업사회 이후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우린 직선의 삶을 살아왔고 거기에 익숙해져 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 내면으로는 원형의 순환적 삶을 무의식 속에 그리면서 살아왔던 게 아닌가 한다. 단적인 예가 '저녁이 있는 삶'을 갈망하는 사람들의 심리욕구가 그것이다. 그리고 덧없다 생각했던 것들이 의미로 다가올 때, 우린 그간 자신이 놓쳤던 것들을 쓰다듬으며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1월이 있었기에 2월이 있고 3월은 2월이 가야 오는 시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에 살지 않은 삶이 있을 수 없고 내일을 기약하지 않는 삶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그것이 일 년을 생각하는지 일생을 생각하는 지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다를 수도 있다. 아마도 그 흐름은 덧없음이 의미가 될 수도, 의미가 부질없음일 수 도 있다. 시간은 그걸 깨닫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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