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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늘 그렇듯, 설거지를 마치면 식탁에 앉는다. 그리고 습관처럼 무심히 살림살이들을 둘러본다. 모두 오래 된 것들이지만 세월만큼 정이든 물건들이다. 이 집으로 이사 온 지는 10년. 그간 변화가 있었다. 아이 둘이 결혼을 해서 나갔다. 모두 이 부엌에서 만들어진 밥을 먹고 학교와 직장을 다녔다. 이제 부엌엔 그릇과 그릇소리, 물소리, 가스 켜는 소리, 음식 끓는 소리가 깔깔대던 아이들 대신 혼성 합창처럼 들어서 있다.

요즘이야 부엌을 주방이라 부르지만 아직도 나는 주방이란 명칭보다 부엌이라 말하기 좋아하고 즐겨 사용한다. 부엌, 이 따스하고 아늑한 공간. 내게 부엌은 나의 제단. 꽃무늬 영대를 두른 나는 이곳을 지휘하는 여사제이기도 하다. 그리 화려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나의 제단엔 아궁이 불 대신 가스레인지가 있고 누르면 쏟아지는 수도라는 문명의 샘이 있다. 그리고 싱크대에는 매일 쓰게 되는 살림 도구와 반질반질한 그릇들이 단정한 자세로 포개 있다. 이 모두 나의 제단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랑스런 제물들이다.

저녁을 짓는다. 오늘의 제물은 돼지고기와 약간의 푸성귀. 시원스레 트인 북쪽 창, 저녁놀아래 제물을 손질한다. 흐르는 물에 푸성귀와 고기를 깨끗하게 씻고 두툼한 냄비에 고기를 앉힌다. 고기가 익는 동안 파도 송송 나물도 조물조물 무쳐야지. 알곡은 압력솥에서 익혀지고 파란 불이 냄비바닥을 뜨겁게 달군다. 이제 물과 불과 도마와 칼의 4부 혼성합창이 울려 퍼질 것이다.

이윽고 쉭쉭대며 김을 내뿜는 압력솥의 볼레로가 경쾌한 소리로 합창의 서막을 연다. 이어 냄비와 프라이팬과 주전자의 푸가가 혼성 코러스로 분위기를 돋우면 성가는 절정에 이른다. 소리는 고요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다. 이제 접시와 사발들의 화려한 마주르카만 남았다. 오오 성스러운 나의 제단에 설설 끓는 국과 찌개들이 파르티타의 맛처럼 깊어간다. 삶의 싱싱한 비린내와 비루함의 비밀스런 저녁밥. 누군들 일용할 양식 앞에서 흠향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감사의 십자 성호가 그어지면 말없는 혀는 아삭거리는 푸성귀들의 음표를 젓가락으로 집어 맛을 음미하고 숟가락 위에는 밥 한술의 우주가 올려 진다.

부엌, 이곳은 아득할 것도 없는 나의 지평선, 나만의 은밀한 공간. 맵고 쓰리고 짜고 시큼한 나의 삶의 냄새와 자취들이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이다. 한 밤중, 속이 헛헛해지고 마음이 제 모습을 놓친 듯 하면 무의식 속에서 부엌으로 간다. 세 아이가 대학 시험 보기 전 날, 삶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끙끙대는 날 밤,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했던가. 그 마음을 어쩌지 못해 한 밤 중 괜스레 그릇도 만져보고 조심스레 찻잔도 들어보았지. 그래도 눅지 않으면 냉장고를 여닫았고. 그래도 가라않지 않으면 부엌의 창을 열고 내리는 눈발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눈발은 우주의 유혹과 허공에게서 어지러웠던 나를 세워 방으로 안내한다. 내가 나온 후 부엌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들의 내적 질서를 은은히 잡아가며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혼돈의 회오리바람에도 묵묵히 스스로를 정리하며 차분해지는 이 공간에서 날마다 정성어린 제물은 올려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는 늦은 저녁. 지난날들을 돌아본다. 어떻게 우리가 이곳에서 머물렀으며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세상 어느 권력과 명예보다도 위대한 궁전 앞에서의 엄숙한 기도는 날마다 이어져 왔다. 어쩌면 이 궁전의 기도가 있었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왔는지 모른다. 먹는다는 건 생명을 살리는 길이요 살아있다는 증거. 이곳에서 식구들과 함께 지지고 볶고 때론 삶기도 하고 찌기도 하면서 살아왔다. 생각할수록 삶과 죽음, 우주의 신비가 함께 하는 '부엌의 칸타타'는 그래서 거룩하고 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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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