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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늦가을 바다에서 남보라 빛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세상 만물이 참으로 기묘하고 신비하다. 단순한 것 같지만 의외로 복잡다단한 게 만물이요 보랏빛 노을도 그 중의 하나일 게다. 인간의 내면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더 복잡하다. 현실과 이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일 게다. 현실과 이상은 극과 극 같지만 알고 보면 서로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 때론 친구가 되기도 하고 때론 적이 되어 자신을 상하게 한다. 그럼에도 한 번쯤 보랏빛 꿈을 꿔보는 게 사람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보랏빛 인생은 있는가. 우선 그냥 인생도 아니고 보랏빛이라면 단순하지가 않다. 왜냐면 보라색이라는 게 극과 극의 두 가지 혼합색이다. 그것도 아주 다른 두 가지가 섞여 탄생한 색이다. 삶이 그렇듯 산다는 자체가 한 가지 색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일 것이다. 수많은 색 중에서도 보랏빛 인생을 꿈꾸는 이유일 게다. 한마디로 남과는 다른, 멋지고 우아한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보라색은 일단 평범한 색은 아니지 싶다. 따라서 다른 색과 쉽게 어울리는 색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는 보라색을 신비한 색이라 하고 누군가는 고통과 단식을 의미하는 종교적 색채가 강하다하며 유럽 일부와 일본에선 왕족의 색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보라색에 취했던 시절이 있다. 그 당시 어머니는 30대 초셨고 초등학교 5학년 초 봄이었던 것 같다. 내일 학교 갈 때 입으라며 내 놓으신 옷은 어머니가 직접 짠 연보라 니트 가디건이었고 재봉틀을 돌려 만든 치마 또한 자주 감자 색이었다. 그 때 나는 연보라색 옷을 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어머니 치마꼬리를 붙잡고 방방 뛰었던 기억이 있다. 보라색은 그렇게 내안으로 들어왔고 몸에 걸쳤으며 사춘기를 지나는 동안 그야말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색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나는 보라색이 의미하는 신비와 고귀함이 인간의 현실에서 어떻게 부서지는가를 책을 통해 먼저 이해하게 되었다. 정연희작가의 '석녀'라는 작품이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뇌리에 남겨진 것은 씁쓸함이었다. 가족관계를 회복하려던 한 여자의 노력 실패 절망 자신과의 싸움을 통한 한 여자로서의 진실한 존재감을 읽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녀가 생각한 결혼은 신비롭고 고귀함만이 있는 게 아니었다. 고통이고 기다림이고 용서의 장이었음을 깨닫는다. 삶은 환상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다. 현실에서 우린 자신을 독특한 한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후 보랏빛 인생, 보랏빛 향기에 대한 생각은 현실에 대한 물음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제 나는 남 보라빛 노을 길을 걸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보랏빛으로 물든 저녁노을에서 죽음과 세상 멸망에 관한 생각을 떠 올린다고 한다. 미술 평론가들도 보라색에서 두 얼굴을 본다고 한다. 빨강의 생명력인 자극과 파랑의 승화 억제 즉 극한적 두 세력을 대변하는 혼합색이니 만큼 두 얼굴의 혼합색이라고도 말한다. 이 걸 설명하는 반고흐의 '까마귀가 있는 밀밭'에는 보라가 의미하는 적나라한 본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누렇게 익은 가을 밀밭, 고통을 견딘 땀의 흔적이 열매를 맺은 밀밭에서 살아있음의 희열을 느끼게 되리라. 그런데 희열 위에 청남 보라 빛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이 얼마나 간결한 삶의 답인가. 살아있는 동안의 생명력과 서서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그것은 계획된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그렇게 다가온 것이었다.

어느새 일몰의 남보라 빛 노을이 지고 있다. 한 염색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물을 들이면서 어떤 색이 꼭 나와야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단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보랏빛 꿈은 늘 간직하며 살기에 늘 설레며 산단다. 그러다 보니 일단 물들여진 색이 나오면 그 색을 사랑하고 사랑하니 한없이 행복하단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 삶이 살고 싶다고 사는 게 아니듯 삶은 살아지는 것일 것이다. 단 보랏빛 꿈은 잃지 말자. 꿈이 없는 삶은 너무 슬프고 쓸쓸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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