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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금방 배달된 한라봉 너덧 개를 식탁위에 올려놓았다. 식탁은 조금 전의 식탁이 아니다. 노랗게 익은 향기로운 과일이 올려 지니 알 수 없는 마법에 식탁이 깨어나는 것 같다. 밀폐된 상자 속에서 나와 실내로 들어오니 과일에서 향이 발산되고 있다. 흐-음 향긋하다. 신선한 향이 심장까지 들어찬다. 내 안에 향기로운 시간이 들어온 것이다.

먹지 않고 과일을 올려두고 바라보는 일은 꽃을 꽂아둔 식탁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그것은 먹을 수 없는 꽃과 먹을 수 있는 과일의 차이일 것이다. 과일을 식탁위에 둔다는 것은 씨앗부터 과육에 이르기 까지 나무의 삶 전체역사와 만나는 일이다. 한 계절 순간의 절정을 누리는 꽃과 달리 과일은 봄·여름·가을을 온몸으로 통과한 결실이므로 과일에는 꽃의 향기부터 낙엽냄새까지 과일의 모든 시간이 들어있다. 한 그루의 나무가 떠오른다.

시골집 마당에는 오래된 감나무가 있다. 이 감나무는 아주 오래 전 시부모님께서 이 집으로 살림을 나면서 심으셨단다. 그러니까 수령이 적어도 60년은 넘지 않았을까 싶다. 생긴 것도 잘 생겼지만 동네에서 제일 맛좋은 '감'하면 시댁'감'을 꼽았었다. 내가 결혼하던 해, 그의 모습은 푸르렀고 풍성했으며 그의 시간은 우렁찼고 눈부셨다. 해마다 가지가 찢어질 듯 많은 과실을 안겨 주었던 감. 시댁에서의 첫날 밤 시누이가 배시시 문을 열고 디밀던 과일도 이 '감'이었고 겨울이면 이를 덜덜 떨며 먹었던 홍시도 잊을 수가 없다. 감나무를 보는 것만도, 가지를 잘라주고 거름을 주고 잘 익은 감을 맛나게 먹는 것도 심지어 나무아래 떨어진 낙엽을 모으는 일도 모두 식구들에겐 사랑의 시간이었다. 그랬던 감나무가 지금은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작년 늦가을이다. 울안을 둘러보다 감나무 앞에서 발길이 멎었다. 얼마만이었던가 나무를 바라본 것이. 1년에 두어 번 많아봐야 서너 번 손님처럼 갔다가 돌아왔다. 눈만 돌리면 보이는 나무였지만 무엇이 그리도 바빴는지 방안만 삐끔 열어보곤 닫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를 잊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 많이 달렸던 '감'만을 가끔씩 떠 올리곤 했었는지 모른다. 생각하니 집을 떠난 후 몇 번이나 거름을 주고 가지를 쳤던가. 잠시라도 그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고 어루만져주었던가. 맛난 과육만을 탐한 건 아니었을까. 약삭빠른 인간관계였다면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그러나 나무는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담담한 듯 꿋꿋한 듯 쓸쓸한 듯 어찌 보면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그 미소가 언젠가 만났던 반가사유상의 미소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친 상상이었을까.

그날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나무의 시간과 마주했다. 떠돌이 삶을 사는 인간에 비해 나무의 숙명적 삶은 단조롭고 고독하다. 모두 떠난 빈 터에서 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그는 묵묵히 온몸으로 삶의 계절을 통과했고 열매를 맺기 위한 노력을 해 온 것이다. 문득 나를 돌아본다. 잘 살고 잘 익어가고 있는 걸까. 그러기 위해 온몸으로 전력투구 했던가. 아쉬움과 부끄러움이 많다. 그러고 보면 인간과 나무의 삶이 전혀 다른 것이라 말 할 수 없다. 삶의 토양과 방식이 다를 뿐 모두 잘 익어가고 싶어 하고 좋은 향기와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는 소망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날 나는 늙은 감나무의 시간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자리는 일상의 자리라는 것을.

지난겨울이 아무리 대단했다 해도 봄은 오고야 만다. 이미 남쪽에선 동백과 매화가 피었다 하고 가로수 은행나무엔 좁쌀만 한 움이 돋았다. 겨울이 고행의 계절이라면 봄은 그것을 견뎌낸 자의 희망의 계절이다. 한 알의 씨앗이 자라 과실을 맺기까지 나무의 시간은 늘 온몸으로 봄 여름 가을을 통과해야한다. 인간도 매한가지일 것이다. 3월, 삶이라는 나무에 매달려 잘 익어가기 위해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과일의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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