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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천지가 봄빛으로 물들고 있다. 대지는 소생하는 생명들로 수런거리고 바람은 살며시 볼을 스친다. 며칠 만에 보는 푸른 하늘인가. 이런 날은 자연스레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너무 아름다워도 눈물이 나는 걸까. 눈이 축축해지면서 문득,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의 마지막 음성을 들었던 그날도 이렇게 하늘이 맑고 푸르렀는데.

그날 아버지께서는 코에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작은 수첩에 무언가를 쓰고 계셨다. 편찮으신데 뭘 하시냐 했더니 심심해서 그냥 끄적거렸다 하셨고 자식들도 그저 그러신가보다 했다. 나이에 비해 건강하셨고 활동적이셨기에 며칠 치료 받고 퇴원할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 순간들이 거짓처럼 한 치 앞도 모르는 사람 일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음성이었고, 당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쓰셨던 모습일 줄이야.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있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은 무언가를 쓰고 계셨던 모습이다. 왜 아버지께서는 굳이 펜을 들고 계셨을까. 아버지는 폐렴으로 입원한 노인환자였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가 틈틈이 일기를 쓰고 계셨다는 걸 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기의 존재는 장례를 마치고 물건을 정리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일기라니· 너무 의외라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워낙 외향적이신 분이라 조용히 뭔가를 쓰시리라곤 전혀 생각을 안했던 것이다.

돌아보면 참 미련하고 무심했던 자식이다. 내 아버지의 속내를 짐작조차 못하다니. 젊은 시절의 아버지 모습만이 전부 인줄 생각했던 것이다. 목소리가 크시고 활발하며 친구와 술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매사 엄하셨으며 가정보다는 사회생활에 많은 시간을 보내셨다. 그래서일까 늘 아버지가 어려웠다. 아니 그게 아버지의 전부인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노라고 나날들은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리고 꼼꼼하며 조용한 노인이셨다.

난생 처음 보게 된 아버지의 정원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간결했다.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이 늘 규칙적이셨으며 절제 있게 삶을 가꾸셨음을 알겠다. 정원을 가꾸던 도구들은 비록 낡고 허름했지만 힘차고 세밀하게 나무와 꽃 풀을 보살폈다. 때로는 당신의 감정과 느낌이 빗질사이에 툭 툭 묻어 있고 사이사이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언뜻언뜻 숨겨 있다. 어찌 가슴이 먹먹하지 않을까. 아버지는 노후 생활에 대한 삶의 태도와 그 방향을 말씀하고 계시다고 생각했다.

일기란 오롯이 자신만의 비밀정원이요 공간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이,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인간이 남긴 영혼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흔적의 가장 아래 밑바닥에 비밀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위인이나 명작, 유명건축물에서도 알 수 있다. 일예로 말테의 수기를 쓴 릴케, 기싱의 고백의 조지 기싱은 일기체의 작품을 냈지만 모두 일기로 썼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그들 내면의 비밀 정원을 훌륭하게 가꾸었기에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유교에서는 수양 불교에서는 참선 기독교에서는 기도라는 단어로 명칭을 하는 바와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일기를 쓴다는 것은 자신의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보람된 삶을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진실 된 고백의 기록임엔 틀림없다.

아버지는 떠나셨지만 열권이 넘는 일기장은 아직도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친정에 가면 아버지를 뵈듯 책장 앞에 서게 된다. 그것에 아버지의 냄새가, 말씀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 사남매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음으로 당신이 우리들 곁에 계시다고 생각게 하는 그리움의 유산이요, 아버지의 생각과 철학, 한 노인의 늙어가는 모습들이 묻어있는 영혼의 유산(遺産)이라는 생각이다. 오래도록 간직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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