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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화분을 정리하고 나니 달랑 두 개의 화초만 남았다. 나무와 꽃을 좋아하고 사랑하지만 우리 집에는 화분이 별로 없다. 좋아는 하는데 정작 화초가 별로 없다.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화초를 잘 키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능력이 좋으면 잘 살던 화초도 죽게 되는 능력을 지녔는지. 그럼에도 그런 내게 오랜 세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는 단하나의 그대가 있다. 이른 봄, 시퍼런 잎과 붉은 꽃이 고귀한 군자란(君子蘭)이라는 관상식물이다.

군자란과의 첫 만남은 지금도 생생하다. 잎은 누렇게 바싹 말랐고 겨우 붙어있던 두 가닥의 뿌리는 거의 썩어있어서 도저히 살 가망이 없어보였다. 군자란을 안고 온 사람은 남편이었다. 죽기직전의 그를 쓰레기장에서 발견한 남편은 너무 안쓰러워 들고 왔노라며 함께 살려보자고 했다. 남편은 지극정성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군자란에 사랑을 쏟았다. 죽어가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은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요구했다. 더구나 중요한 변화는 화초 기르기에 실패한 내가 다시 화초에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3개월 후 썩어가던 뿌리가 말라 떨어져 나가고 옆으로 새로운 실뿌리가 돋아나왔다. 놀라운 자생력이요 자생술이지 않을 수 없었다.

불필요한 것은 가능한 덜어내고 필요한 것은 최소한 갖추는 것 그것은 식물에서나 인간 삶에 있어서나 생존의 핵심으로 보인다. 군자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얼마나 스스로를 단련해야 메마른 풀과 죽은 나무위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지, 그렇게 줄기와 잎으로 자라나 꽃으로 피기까지 피울 수 있는지 생각하곤 한다. 사실 화초에 물을 주고 가꾸는 일이 대단한 일일 수는 없다. 아니 사소한 일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작은 사소함, 별 하찮은 일일 수 있는 일상에서 힘을 얻지 못하다면 대체 어디서 가능할 것인가. 일상적인 것은 가장 덧없는 것이면서도 가장 심오하다. 가장 작고 사소한 것들의 변화야말로 깊은 의미에서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시작되는 게 아니던가.

말이 키웠다지만 혼자 키운 게 아니다. 사랑만으로 안 되는 인간의 한계가 있다. 자연의 힘 이다. 빛과 바람, 물이 있었기에 살아날 수 있었다. 삶도 그럴 것이다. 지금의 일상이 어찌 혼자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가 온 지 15년이 훨씬 지났다. 돌아보니 내 일상에도 군자란의 비늘껍질 같은 아픔이 밀려왔지만 가족이라는 뿌리가 곁에 있었기에 파도를 넘을 수 있었다. 인내의 시간이 가고 새 살이 삶의 일부처럼 돋아나 이렇게 군자란을 바라보고 있다. 순간순간 저 군자란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살게 되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인간의 삶과 무엇이 크게 다르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매일매일 우리가 겪는 것은 흔하디흔한 것들이다. 나날의 삶은 따분하고 구차하고 비굴하기 쉽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하찮은 것은 아니다. 하루하루는 지루하고 무의미할 수 있지만 그 순간은 때대로 너무도 생생하고 활기찬 것이기도 하다. 단지 그 활기는 우리의 주의를 받지 못한 채 숨어 있을 뿐이다. 가장 흔해빠진 사물도 우리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느끼며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새로운 빛 아래 발견 된 것처럼 특별할 수 있다. 나는 이 숨겨진 일상에 무한 매력을 느낀다. 그의 모습은 일상의 윤기요 기쁨이다. 이들을 바라고 있으면 깊은 곳으로 부터 내 영혼은 푸근해지기 시작한다.

1월이 20여일 지났다. 해가 바뀌면 뭔가 새롭고 특별한 무엇을 기대하지만 금세 바뀌지 않는 게 일상이다. 오늘도 군자란을 바라본다. 참으로 생이란 게 신비스럽다. 저 시퍼런 잎을 바라보면 일상이 푸르게 자맥질을 한다. 마침 내 머리위로 아침 햇살이 베란다를 통해 소파위로 비스듬히 들어온다. 빛은 부드러우면서 밝다. 어쩌면 행복은 우리가 전혀 생각지 않고 그 어떤 기대나 의도마저 놓아 버릴 때 우연히 그리고 느닷없이 덮쳐오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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